만리장성, 단일 건축물이 아니다
만리장성(万里长城, Wànlǐ Chángchéng)은 흔히 하나의 긴 성벽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여러 왕조가 수천 년에 걸쳐 축조한 성벽들의 총칭입니다. 중국 국가문물국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만리장성의 전체 길이는 약 21,196킬로미터에 이릅니다. 한국 휴전선 길이의 80배가 넘고, 한반도 전체를 남북으로 왕복한 거리보다도 긴 셈입니다.
만리장성은 중국 북부 국경을 따라 동쪽 산해관(山海关)에서 서쪽 가욕관(嘉峪关)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주된 라인 외에도 지선, 이중벽, 보조 요새들이 가지처럼 뻗어 있어 전체 구조는 놀랍도록 복잡합니다. 평원뿐 아니라 산봉우리, 사막, 협곡을 가로지르며, 일부 구간은 해발 수천 미터에 이릅니다.
흔히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구조물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지상에서 볼 때 만리장성의 폭은 겨우 몇 미터에 불과해, 달이나 우주 궤도에서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과장된 표현이 생긴 것 자체가 만리장성의 규모에 대한 경외감을 보여줍니다.
진 시황제 이전의 전신
만리장성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춘추전국시대 각 제후국들이 서로 또는 북방 유목민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이 원형입니다. 제나라의 제장성, 초나라의 방성, 진나라의 북방 장성 등 여러 독립된 성벽이 존재했습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북방의 흉노(匈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의 장성들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대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장군 몽염(蒙恬)이 30만 대군과 수많은 노역자를 동원해 1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성벽이 만리장성의 본격적 시작입니다.
이 시기 성벽은 주로 흙을 다져 쌓는 판축(板築)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돌과 벽돌의 만리장성과는 모습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흙벽 만리장성의 일부는 지금도 간쑤성(甘肃省), 네이멍구(内蒙古) 등지에 잔존해 있습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 건설에는 엄청난 인명 희생이 따랐다는 전설이 많습니다.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이 대표적입니다. 남편이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되어 죽자 맹강녀가 성벽 앞에서 울었고, 그 눈물에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남편의 유해가 드러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설은 만리장성이 민중의 고통 위에 세워졌음을 상징합니다.
한나라의 확장과 중간 시기
진나라가 단명한 뒤 한나라(기원전 202~기원후 220) 시대에 만리장성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한무제(汉武帝) 시기에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성벽이 연장되었고, 요새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시기 만리장성은 단순한 방어선이 아니라 무역로 보호와 국경 통제의 역할을 겸했습니다.
한나라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3~6세기),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도 성벽 건설과 보수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수양제는 대규모 축성 공사를 벌였으나 과도한 노역으로 백성의 반발을 샀습니다.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1271~1368) 시기에는 만리장성의 방어적 의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몽골족 자체가 장성 밖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중국 북방과 몽골 고원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어 통치한 원나라에게 성벽은 필요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벽은 과거의 유물처럼 방치되었습니다.
명나라와 현재의 만리장성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돌과 벽돌로 쌓인 만리장성의 대부분은 명나라(1368~1644) 때 축조된 것입니다. 명나라는 몽골족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였기 때문에, 북방 유목민의 재침을 막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명나라는 약 200년에 걸쳐 만리장성을 대규모로 재건하고 확장했습니다. 기존의 흙벽을 돌과 벽돌로 교체하고, 요새와 봉수대를 체계적으로 배치하며, 방어 전략에 따라 성벽의 높이와 두께를 조절했습니다. 명나라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약 8,851킬로미터로 측정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명나라의 종말은 만리장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1644년 산해관을 지키던 장수 오삼계(吳三桂)가 청나라 군대에게 성문을 열어주었고, 만주족이 중원으로 들어와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천혜의 요새도 내부 분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청나라 시대(1644~1912)에는 만주족 왕조가 북방을 이미 지배했기 때문에 만리장성의 방어적 의의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이후 성벽은 관리되지 못하고 자연 훼손과 인위적 파괴를 겪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문화재적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보존과 복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관광 구간
베이징 근교의 만리장성이 관광객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고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각 구간마다 특색이 있으니 목적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 바달링(八达岭):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약 7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구간. 접근성이 좋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습니다. 1957년 일반에 개방된 이후 닉슨, 고르바초프, 엘리자베스 여왕 등 수많은 외국 정상이 방문했습니다. 다만 워낙 관광지화되어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다른 구간을 추천합니다.
- 무티안위(慕田峪): 베이징 동북쪽 70킬로미터. 바달링보다 한가롭고 풍경이 아름다워 최근 인기가 높습니다. 케이블카와 루지(썰매)로 오르내릴 수 있어 가족 여행객에게도 적합합니다.
- 진산링(金山岭): 베이징 북동쪽 130킬로미터. 명나라 시대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한 구간 중 하나. 사진 촬영에 이상적이며 하이커들에게 인기입니다.
- 시마타이(司马台): 진산링과 연결된 구간. 과격한 지형에 세워져 험준한 풍경이 일품입니다. 야간 개장이 가능한 유일한 구간이기도 합니다.
- 쟌커우(箭扣): 복원되지 않은 야성적 구간. 전문 하이커들이 찾는 곳으로 안전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공식 개방 구간은 아니지만 사진가들에게는 성지입니다.
- 산해관(山海关): 만리장성의 동쪽 끝. 바다와 만나는 지점 라오롱터우(老龙头)가 장관입니다. 베이징에서 기차로 약 3시간.
- 가욕관(嘉峪关): 만리장성 서쪽 끝. 간쑤성 사막 지역에 위치합니다. 명나라 축조의 대표적 요새로, 실크로드의 종착점이기도 했습니다.
만리장성의 구조와 건축
만리장성의 구조는 구간에 따라 다르지만, 명나라 시대 본격적 구간은 일정한 양식을 따릅니다.
- 성벽 본체: 높이 7
8미터, 윗부분 폭 45미터, 밑부분 폭 6~7미터가 일반적입니다. 말을 달리거나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며 이동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 여장(女墻): 성벽 윗부분 양쪽에 설치된 낮은 담. 전투 시 병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 사격 구멍(射孔): 여장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 활이나 총을 쏠 때 사용되었습니다.
- 적루(敌楼): 성벽 위에 일정 간격으로 세운 2~3층의 망루. 병사들의 숙소이자 감시 지점입니다.
- 봉화대(烽火台): 적이 나타나면 연기나 불꽃으로 신호를 보내는 시설.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사용해 멀리까지 경보를 전달했습니다.
- 관(关): 주요 길목에 세운 대형 요새. 산해관, 가욕관, 거용관 등이 대표적입니다.
건축 재료는 구간에 따라 달랐습니다. 명나라 시대 북방 구간은 단단한 화강암과 벽돌로 축조했고, 서부 사막 구간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갈대를 사용했습니다. 지형에 따라 유연하게 재료를 바꾼 실용성이 돋보입니다.
만리장성이 실제로 기능했을까
만리장성이 외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
긍정적 평가로는 만리장성이 없었다면 중국 북방의 농경 지역이 유목민의 약탈에 더 자주 노출되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완벽한 방어선은 아니었지만 공격 비용을 크게 높여 대규모 침입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었습니다.
부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북방 유목민이 여러 차례 중국을 정복한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몽골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모두 만리장성을 뚫고 중원을 차지했습니다. 성벽 자체보다는 내부 정치적 안정이 더 중요했다는 해석입니다.
아마도 가장 정확한 평가는, 만리장성이 완전한 방어 장벽이라기보다는 경고 시스템이었다는 것입니다. 봉화대의 신호 체계 덕분에 북방의 움직임이 수도까지 빠르게 전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적 대응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만리장성 여행 실용 팁
만리장성 여행을 계획한다면 다음 사항을 고려하세요.
- 계절: 봄(4
5월)과 가을(910월)이 최적. 여름은 덥고 관광객이 많으며, 겨울은 눈 덮인 풍경이 아름답지만 춥고 일부 구간은 폐쇄됩니다. - 복장: 편한 운동화는 필수. 성벽 위는 계단이 많고 불규칙해 미끄러운 신발로는 위험합니다.
- 준비물: 물, 간식, 자외선 차단제, 모자. 구간에 따라 매점이 없는 곳도 있습니다.
- 시간: 최소 반나절은 필요합니다.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보통 하루 일정입니다.
- 날씨: 북경은 겨울이 매우 춥고 건조하며, 봄에는 황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리 확인해 두세요.
- 교통: 단체 투어, 개인 차량 대절, 대중교통 모두 가능합니다. 바달링은 지하철 연장 노선과 기차로 접근 가능합니다.
문화적 유산과 현재
만리장성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007년에는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습니다. 중국의 여권에는 만리장성 그림이 들어 있을 정도로 국가적 상징입니다.
현재 전체 만리장성 중 약 30%만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는 자연 풍화와 인위적 훼손으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중국 정부는 보존 사업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방대한 구간을 모두 관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여행객도 낙서, 벽돌 반출, 무단 등반 같은 행위를 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리장성과 관련된 중국어 표현도 있습니다. 不到长城非好汉(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진정한 대장부가 아니다)라는 마오쩌둥의 시구는 지금도 만리장성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여행 중 이 문구를 발견하면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활용해 보세요.
매일11시 블로그에서는 중국 여행과 문화 이해에 도움이 되는 실용 중국어 표현을 매일 3개의 표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립니다.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해 두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