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11시BLOG
← 블로그 목록
독일 사람들이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흰 아스파라거스에 미치는 이유
🇩🇪 독일어

독일 사람들이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흰 아스파라거스에 미치는 이유

2026-05-01·9분 읽기

5월 초 베를린, 한 식당의 메뉴판을 받았다. 첫 페이지가 통째로 슈파겔(Spargel) 메뉴였다. 슈파겔과 슈니첼, 슈파겔과 햄, 슈파겔과 감자, 슈파겔 수프, 슈파겔 키쉬. 한 페이지 가득.

옆 테이블의 독일인 가족은 모두 슈파겔을 시켰다. 큰 접시에 굵은 흰 아스파라거스가 5~6개씩 올려져 있었고, 옆에 햄, 감자, 노란 홀란데이즈 소스가 있었다. 다들 진지한 얼굴로 먹고 있었다.

이게 독일의 "슈파겔차이트(Spargelzeit)" — 슈파겔 시즌의 풍경이다. 1년 중 약 10주 동안만 일어나는 일이다.

슈파겔이 뭐냐면

Spargel(슈파겔)은 독일어로 아스파라거스를 뜻한다. 그런데 독일에서 "Spargel"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으로 흰 아스파라거스(weißer Spargel)를 의미한다. 녹색 아스파라거스(grüner Spargel)는 따로 그렇게 부른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햇빛을 안 본 상태로 자란다. 흙으로 덮어 키워서 광합성이 안 일어나기 때문에 색깔이 안 들고, 식감이 부드럽고, 맛이 더 섬세하다. 가격은 녹색의 2~3배.

특징을 정리하면.

  • 두께 — 손가락 한 개에서 두 개 굵기까지 다양
  • 색깔 — 완전히 흰색, 끝부분만 살짝 자줏빛
  • 식감 — 익히면 부드러움, 살짝 단맛
  • 가격 — 1kg에 8~25유로 (시즌 초반과 후반에 따라 다름)

시즌이 정확히 정해져 있다

독일 슈파겔 시즌은 비공식적으로 "4월 중순부터 6월 24일까지"다. 6월 24일은 가톨릭 성인 요한의 축일(Johannistag)인데, 이날을 "슈파겔질베스터(Spargelsilvester)" 즉 슈파겔의 마지막 날로 부른다.

독일 농부들은 이 날 이후로는 슈파겔을 더 이상 수확하지 않는다. 이유는 식물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서 — 다음 해에도 수확하려면 6월 말부터는 자유롭게 자라도록 둬야 한다.

이 전통이 1년 중 약 10주만 슈파겔을 먹는 강박을 만들었다. 7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슈파겔을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수입품, 냉동품도 있다), 신선한 독일산 슈파겔에 진심인 시즌은 정확히 그 10주다.

1년에 10만 톤 이상 먹는다

독일이 유럽에서 슈파겔 최대 소비국이다. 1년에 약 10만 톤 이상을 소비한다. 1인당 환산하면 1.5kg 정도. 이게 평균이고, 슈파겔 좋아하는 사람은 시즌 동안 매주 한 번씩은 먹는다.

생산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독일 전국에 슈파겔 농장이 있고, 가장 유명한 곳들은.

  • Beelitz(베를리츠) — 베를린 남쪽, "슈파겔의 수도"라 불림
  • Schwetzingen(슈베칭엔) — 하이델베르크 근처
  • Schrobenhausen(슈로벤하우젠) — 바이에른 지역
  • Niedersachsen(니더작센) — 가장 큰 생산지

베를리츠는 4월 말~5월 초에 슈파겔 페스티벌(Spargelfest)을 연다. 마을 전체가 슈파겔이다. 슈파겔 여왕(Spargelkönigin)을 뽑기도 한다. 진짜다.

슈파겔 클래식 — 햄, 감자, 홀란데이즈

독일에서 슈파겔을 먹는 가장 표준적인 방식이 있다. "Spargel mit Schinken und Kartoffeln"이라고 부른다.

  • 슈파겔 — 큰 슈파겔 56개를 통째로 삶음 (껍질을 깨끗이 벗긴 후, 약 1520분)
  • 샹켄(Schinken) — 검은 숲 햄(Schwarzwälder Schinken) 또는 일반 햄
  • 감자(Kartoffeln) — 그냥 삶은 감자
  • 홀란데이즈 소스(Sauce Hollandaise) — 노란색의 버터와 달걀노른자 소스

가격은 식당에서 보통 18~28유로. 비싼 편이지만 시즌의 별미이기 때문에 다들 군말 없이 시킨다.

(참고로 슈파겔 삶는 데 슈파겔 전용 냄비가 있다. 길고 좁은 통 모양으로, 슈파겔을 세워서 삶는다. 끝부분만 물 위에 노출되는 구조. 이게 진짜 있다)

베를린에서 슈파겔 시즌 즐기기

(2026년 4~6월 기준 영업 중인 곳들)

  • Spargel-Spree — 슈파겔 시즌만 운영하는 팝업 레스토랑들
  • Restaurant Klosterstüb'l — 베를린 남쪽, 슈파겔 메뉴 다양
  • Hartmanns — 미슐랭 별 받은 곳, 고급 슈파겔 코스
  • Beelitzer Spargelhof — 베를리츠 농장 직영 레스토랑

베를리츠는 베를린 시내에서 기차로 약 30분. 시즌에 가면 농장에서 직접 채취한 슈파겔을 먹을 수 있다. 슈파겔 수확 체험도 있다. 이게 의외로 인기다.

알아두면 좋은 독일어

  • "Spargelzeit" — 슈파겔 시즌
  • "Wie lange ist die Spargelzeit?" — 슈파겔 시즌이 언제까지예요?
  • "Heute frisch gestochen" — 오늘 갓 수확한 거예요 (식당이나 시장에서 자주 보임)
  • "Mit oder ohne Schinken?" — 햄 같이 드릴까요, 따로 드릴까요?
  • "Kann ich es bitte schälen lassen?" — 껍질 벗겨 주실 수 있어요? (시장에서 살 때)

마지막 표현이 의외로 중요하다. 슈파겔 껍질이 두껍고 거친데, 시장에서 사면 점원이 그 자리에서 껍질을 벗겨 주는 서비스가 있다. 이걸 활용하면 집에서 요리하기 훨씬 편하다.

왜 이렇게까지 진심인 걸까

개인적으로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그냥 채소인데 왜 시즌까지 정해놓고 마치 의식처럼 먹는지.

독일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독일은 겨울이 길고 어둡다. 4월부터 햇볕이 길어지고, 처음 나오는 신선한 채소가 슈파겔이다. 슈파겔을 먹는 건 봄이 왔다는 신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한국 사람이 봄에 냉이, 두릅을 찾는 것과 비슷한 정서다. 다만 독일 사람들이 훨씬 집요하게 한 채소에 매달릴 뿐.

만약 시즌에 독일에 가 있다면

식당 메뉴판에서 슈파겔이 보이면 한 번은 시켜 보자. 클래식 슈파겔 미트 솅켄(Spargel mit Schinken)이 첫 도전으로는 가장 무난하다. 18유로면 평소에 슈파겔 1년치 먹을 양이 한 접시에 나온다.

5월 베를리츠 슈파겔 페스티벌은 일정이 맞으면 진심으로 추천한다. 마을 전체가 흰 채소 하나에 진심인 모습 — 이게 독일이다.


매일11시

매일 독일어 표현 3개가
카카오톡으로 도착합니다 📚

발음 듣기, 구문 분석, 문법 해설까지 한 번에.

홈페이지

이런 글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