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 기차로 30분. 톨레도(Toledo)에 도착했다. 시내 들어가는 길에 가이드가 한마디 했다. "이 도시에서는 모스크였던 곳이 시나고그가 됐다가 교회가 된 건물도 있어요." 농담인 줄 알았다. 진짜였다.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Santa María la Blanca). 이름은 가톨릭 성당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 이슬람 건축양식 그대로다. 흰 기둥, 말굽 아치, 별 무늬. 원래 12세기에 시나고그(유대교 회당)로 지어졌다. 무어 양식 장인들이 지어준 시나고그.
이 한 건물에 톨레도라는 도시 전체의 정체가 들어 있다.
세 종교가 같이 살았던 도시
8세기부터 1085년까지, 톨레도는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는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이 같이 살았다. 같은 도시 안에서, 종종 같은 거리에서.
1085년에 알폰소 6세 왕이 톨레도를 다시 정복하면서 기독교 도시가 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가 무슬림과 유대인을 쫓아내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보호하면서 같이 살게 했다.
이 시기를 "라 콘비벤시아(La Convivencia)"라고 부른다. "공존"이라는 뜻이다.
12~13세기 톨레도에서는 아랍어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학자들이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섞여서 같이 일했다.
이게 가능했던 도시는 중세 유럽 전체에서 거의 톨레도뿐이었다. (다른 안달루시아 도시들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지만 톨레도가 가장 오래 갔다.)
좁은 골목이 미로 같은 이유
톨레도 구시가지는 차가 거의 못 들어간다. 골목이 너무 좁고 구불구불해서다.
이 골목 구조도 이슬람 도시의 흔적이다. 이슬람 도시는 큰길이 아니라 작은 골목 중심으로 설계됐다. 가족 공간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그늘을 만들고, 적이 침입했을 때 빨리 못 다니게 하기 위해서.
기독교 정복 후에도 도시 구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새 건물을 지을 때 옛 길을 따라 지었다. 그래서 21세기 톨레도 골목이 8세기 이슬람 도시 구조 그대로다.
지도 앱이 있어도 길을 잃는다. (개인적으로는 일부러 길을 잃는 게 톨레도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골목에서 갑자기 시나고그가 나오고, 모퉁이 돌면 12세기 모스크가 카페가 되어 있다.
톨레도 칼이 유명한 진짜 이유
톨레도 기념품 가게 어디 가도 칼을 판다. 톨레도 칼(espada toledana). 그냥 관광 상품 같지만 사실 진짜 유명하다.
11세기부터 톨레도는 유럽 최고의 검을 만들던 도시였다. 비결은 톨레도 강철과 특별한 담금질 기법. 이 기법은 이슬람 시대부터 내려왔고, 기독교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알렉산더 더 그레이트의 후계 군대가 톨레도 칼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을 때 쓴 검도 톨레도산이라는 설이 있다. (이 부분은 좀 과장됐을 수도 있다.)
진짜인 건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신대륙에 들고 간 검의 대부분이 톨레도산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 칼 만드는 기술이 무슬림 장인들에서 시작됐다는 점.
그레코의 도시이기도 하다
톨레도는 화가 엘 그레코(El Greco)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스 출신이지만 스페인 톨레도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았고,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여기서 그렸다.
산토 토메 교회(Iglesia de Santo Tomé)에 그의 대표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이 있다. 그림 한 점 보러 작은 교회에 들어가야 하는 게 좀 어색하긴 한데, 들어가서 5분만 봐도 왜 다들 이 그림 얘기를 하는지 알게 된다.
길게 늘어진 인물들, 천상과 지상이 겹쳐진 구도. 16세기 그림인데 묘하게 현대적이다.
점심은 마사판으로
톨레도 명물 디저트가 마사판(mazapán)이다. 아몬드 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과자.
이것도 이슬람 시대 음식이다. 12세기 톨레도 무슬림들이 만들던 게 가톨릭 시대로 넘어왔고, 이제는 톨레도 카톨릭 수녀원에서도 같은 레시피로 만든다.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수녀원(Convento de Santo Domingo el Antiguo)이 유명하다.
작은 회전 창에 돈을 놓고 사는 식이다. 수녀들이 안 보이게 만든 구조. (이건 좀 신기한 경험이다.)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가능하지만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가능하다고 해서 그게 좋은 방법은 아니다.
낮의 톨레도와 밤의 톨레도가 완전히 다르다. 관광객이 빠지는 저녁 8시 이후, 좁은 골목에 가로등이 켜지면 분위기가 진짜 중세다. 카페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걷기 좋은 도시다.
1박 2일을 잡으면 톨레도가 진짜 어떤 도시인지 보인다. 세 종교가 한 도시에 있던 흔적이 천천히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