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한 날 비가 왔다. 갈리시아는 스페인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지역이다. 1년의 절반은 흐리거나 비가 온다. (이 날씨 덕에 풍경이 아일랜드와 비슷하게 푸르다.)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Pulpo a la gallega" — 갈리시아식 문어. 이게 갈리시아 명물이라고 들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나무 접시가 나왔다. 두툼하게 잘린 문어 다리, 위에 파프리카 가루, 굵은 소금, 올리브 오일. 그게 다였다.
너무 단순한 모양에 처음에는 살짝 실망했다. 그런데 한 입 먹고 나서 침묵했다.
왜 이렇게 부드러운지
문어는 잘못 익히면 고무처럼 질겨진다. 한국에서 문어 요리를 먹다 보면 가끔 그런 경험이 있다. 그런데 갈리시아 풀포는 부드럽다. 정말 부드럽다. 칼이 거의 필요 없다.
비결은 익히는 과정에 있다.
- 냉동을 거친다 — 신기하게도, 한 번 얼린 문어가 더 부드럽다. 세포벽이 깨져서 그렇다는 설명을 들었다.
- 겁먹게 한다(asustar) — 끓는 물에 문어를 세 번 담갔다 뺀다. 이게 진짜 갈리시아식 핵심이다. 다리가 동그랗게 말리는 모양이 만들어진다.
- 20분~40분 끓인다 —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정확한 시간을 지킨다.
- 나무 접시에 자른다 — 도자기가 아닌 나무. 이건 전통이기도 하고, 나무가 살짝 수분을 흡수해서 식감이 더 좋아진다는 설도 있다.
파프리카는 매운 것(picante)과 안 매운 것(dulce) 두 가지를 섞는 경우가 많다. 올리브 오일도 갈리시아 산이라기보다 안달루시아 쪽 좋은 걸 쓴다.
단순한 음식이 어려운 이유는 재료 자체의 품질로 승부해야 해서다.
풀페이라(Pulpeira)라는 직업
갈리시아에는 풀페이라(pulpeira)라는 직업이 있다. 풀포 만드는 사람. 이 직업은 거의 여성이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풀페이라가 있었다. 시장이 서는 날, 풀페이라가 큰 구리 솥(caldera de cobre)을 들고 와서 광장에서 문어를 끓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접시씩 받아갔다.
지금도 시골 시장에 가면 이 풍경이 남아 있다. 큰 솥, 김이 펄펄 나는 물, 풀페이라가 긴 가위로 다리를 잘라 접시에 담는다.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인상적이다.
루고(Lugo) 주의 카르벨로스(Carballiño) 마을이 풀포의 수도라고 불린다. 매년 8월 둘째 주 일요일에 문어 축제(Festa do Pulpo)를 연다. 5만 명이 모인다.
비 오는 날 먹는 게 진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갈리시아에서는 비 오는 날 풀포가 더 맛있다고 한다.
이유가 두 가지다. 첫째, 갈리시아 사람들에게 비는 일상이라서, 비 오는 날 식당에 가는 게 익숙하다. 손님이 적은 날 풀페이라가 더 정성스럽게 만든다는 농담도 있다.
둘째, 풀포는 따뜻하게 먹어야 진짜다. 추운 날, 비 오는 날, 김이 펄펄 나는 풀포 한 접시. 그 분위기가 이 음식의 절반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이유가 진짜라고 본다. 같은 풀포를 마드리드에서 먹어봤는데 맛이 달랐다. 갈리시아 비 오는 날의 그 맛이 안 났다.)
풀포와 같이 마시는 술
갈리시아 풀포에는 갈리시아 와인이 같이 나온다. 보통 알바리뇨(Albariño)다.
알바리뇨는 갈리시아 리아스 바이샤스(Rías Baixas) 지역에서 나는 화이트 와인. 짭짤하고 미네랄 느낌이 강해서, 해산물과 잘 맞는다는 평이 많다. 산뜻한 산미가 풀포의 기름진 풍미를 잡아준다.
리베이라 사크라(Ribeira Sacra)의 멘시아(Mencía) 레드 와인을 같이 마시는 사람도 있다. 가벼운 레드라서 풀포와 의외로 잘 맞는다. 그런데 풀포에는 화이트가 더 정석이다.
리베이로(Ribeiro) 와인을 작은 도자기 잔(taza)에 따라 마시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다. 와인을 잔에 꽉 따르고 한 번에 마시는 식. 와인 시음회 분위기와는 다르다.
갈리시아가 스페인 같지 않은 이유
처음 갈리시아에 가면 스페인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날씨가 다르다. 회색 하늘, 안개, 비. 풍경이 푸르다. 음식이 다르다. 해산물 중심, 우유와 치즈가 많다. 사람들도 좀 다르다. 더 조용하고, 덜 떠들썩하다.
언어도 다르다. 갈리시아어(galego)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중간쯤 되는 언어다. 마을 노인들은 갈리시아어로 대화한다. 식당 메뉴도 갈리시아어로 적힌 곳이 많다.
이런 차이가 갈리시아 풀포의 맛에도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달루시아의 화려한 음식, 카탈루냐의 세련된 음식과는 다른, 묵직하고 정직한 갈리시아의 맛.
비 오는 날 다시 산티아고에 간다면, 가장 먼저 풀포 한 접시를 시킬 거다. 와인 한 잔과 함께. 그게 갈리시아를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