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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제도 — 스페인이지만 아프리카에 더 가까운 화산 섬
🇪🇸 스페인어

카나리아 제도 — 스페인이지만 아프리카에 더 가까운 화산 섬

테네리페 화산 정상에서 본 풍경. 스페인이라기보다는 다른 행성이었다.

2026-04-28·8분 읽기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 테네리페(Tenerife) 공항에 내렸을 때 첫 인상은 "여기 스페인 맞나?"였다. 야자수, 화산 봉우리, 검은 모래 해변. 풍경이 카리브해와 모로코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지도를 봤더니 사실 그게 자연스러웠다. 카나리아 제도는 아프리카 모로코 해안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스페인 본토에서는 1000km 이상. 정치적으로는 스페인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다.

7개의 섬, 7개의 풍경

카나리아 제도는 7개 주요 섬으로 구성된다. 다 화산섬이다. 그런데 각 섬의 분위기가 다 다르다.

  • 테네리페 — 가장 큰 섬, 스페인 최고봉 테이데 화산이 있다
  • 그란 카나리아(Gran Canaria) — "축소된 대륙"이라고 불릴 만큼 풍경이 다양하다
  • 란사로테(Lanzarote) — 화산 풍경이 가장 강렬한 섬
  •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 — 사하라 사막 같은 모래 해변
  • 라 팔마(La Palma) — 별 보기에 좋은 섬
  • 라 고메라(La Gomera) — 휘파람 언어로 유명한 섬
  • 엘 이에로(El Hierro) — 가장 작고 가장 외딴 섬

처음 가는 사람은 보통 테네리페나 그란 카나리아부터 간다. 직항이 많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테이데 화산 정상의 풍경

테네리페에 갔다면 테이데(Teide) 화산을 빼놓을 수 없다. 해발 3715m. 스페인 영토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차로 해발 2300m까지 올라간다. 거기서 케이블카로 3550m까지. 정상 200m는 따로 허가가 필요하다.

올라가면서 풍경이 점점 비현실적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소나무 숲, 그다음 회색 화산암, 마지막엔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황량한 풍경. 영화 "혹성탈출"이나 "스타워즈" 촬영지로 쓰인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충분히 이해됐다.

정상에서 본 구름이 발 아래에 있는 풍경. 그게 화산 위에서만 가능한 감각이다.

여기서 운이 좋으면 다른 섬들이 다 보인다. 라 팔마, 라 고메라, 엘 이에로. 대서양 한가운데 흩어진 작은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란사로테가 가장 강렬하다

화산 풍경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사실 란사로테가 더 인상적이다.

티만파야 국립공원(Parque Nacional de Timanfaya). 1730년대 6년 동안 폭발한 화산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검은색, 빨간색, 황토색이 섞인 땅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이 거의 없는 황량한 풍경.

공원 안에 식당이 있다. 거기서 신기한 걸 보여준다. 땅 속 50cm 지점이 아직도 600도다. 그 열로 닭고기를 굽는다. 화산 그릴이다. 직접 봤는데 비현실적이었다.

란사로테 와이너리도 특이하다. 화산재로 덮인 땅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포도나무를 심는다. 바람을 막고 수분을 모으기 위해서. 황량한 검은 땅 위에 작은 초록 점들이 뿌려져 있는 풍경. 우주 다른 행성 같다.

음식이 의외로 강렬하다

카나리아 제도 음식은 스페인 본토와 좀 다르다. 아프리카 영향이 있고, 신대륙 영향도 있다.

파파스 아루가다스(papas arrugadas) — 작은 감자를 소금물에 끓여서 껍질이 쭈글쭈글해진 거. 그냥 감자인데 신기하게 맛있다. 위에 모호 베르데(mojo verde, 초록 소스)나 모호 로호(mojo rojo, 빨간 매운 소스)를 뿌려 먹는다.

고피오(gofio) — 곡물 가루로 만든 전통 음식. 카나리아 원주민(관체족)이 먹던 거. 죽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디저트에 쓰기도 한다.

바라키토(barraquito) — 카나리아식 카페. 우유, 컨덴스드 밀크, 럼주, 에스프레소, 시나몬이 층층이 쌓인 커피. 처음에는 이상하다 싶지만 한 번 마시면 자꾸 생각난다.

(개인적으로는 바라키토가 신선했다. 그냥 카페오레가 아니라 진짜 음료 같았다.)

카나리아 제도가 스페인이 된 이유

카나리아 제도가 스페인령이 된 건 1496년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가는 길에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 섬에는 관체족(Guanches)이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베르베르족 계통, 즉 북아프리카 계열이었다. 카나리아 정복 과정에서 관체족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일부 문화와 유전자는 남아 있다.

지금도 라 고메라에는 휘파람 언어 "실보 고메로(Silbo Gomero)"가 남아 있다. 깊은 계곡에서 멀리 있는 사람과 휘파람으로 대화하는 언어.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다.

이런 역사가 카나리아 제도를 단순한 스페인 휴양지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스페인이지만 스페인이 아니고, 아프리카 같지만 아프리카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섬들이다.

한국에서 가기 좋은 곳인가

솔직히 한국에서 카나리아 제도까지는 좀 멀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경유 항공편을 타야 한다. 총 17~20시간.

그래도 가볼 만한 가치는 있다. 일주일이면 두 섬 정도 충분히 본다. 테네리페와 란사로테 조합을 추천하고 싶다. 화산, 검은 모래 해변, 색다른 음식, 그리고 스페인 같지 않은 스페인.

마드리드만 보고 가면 모르는 스페인의 다른 얼굴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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