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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사람들이 일요일 정오에 버무스를 마시는 이유 — la hora del vermut
🇪🇸 스페인어

마드리드 사람들이 일요일 정오에 버무스를 마시는 이유 — la hora del vermut

2026-05-01·9분 읽기

마드리드 라 라티나 동네, 일요일 정오. 광장 옆 작은 바(bar)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안에는 자리가 없어서 다들 길에 서서 마시고 있었다. 손에 들린 건 진토닉도 맥주도 아니었다. 작은 잔에 든 진한 갈색 음료 — 버무스(vermut)였다.

"Una caña, por favor(맥주 한 잔 주세요)"라고 했더니 할아버지 한 명이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Hijo, hoy es domingo. Vermut(아들아, 오늘 일요일이야. 버무스 마셔)."

그날 처음 알았다. 마드리드에서 일요일 정오는 "라 오라 델 베르무트(la hora del vermut)" 시간이라는 것을.

버무스가 뭐냐면

버무스(vermut, 영어로는 vermouth)는 와인에 향초와 향신료를 우려낸 강화 와인이다. 알코올 도수는 보통 15~18%.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원조이지만, 스페인 — 특히 카탈루냐와 마드리드 — 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스페인 버무스는 보통 "베르무트 로호(vermut rojo)" 즉 붉은 버무스가 표준이다. 약간 달고, 쌉쌀하고, 향신료의 깊이가 있다. 마실 때는 보통 이렇게 나온다.

  • 작은 잔(코파)에 얼음 한두 조각
  • 오렌지 슬라이스 또는 올리브 한 알
  • 탄산수 약간 (선택)

가격은 보통 한 잔 2.50~4유로. 비싼 동네라도 5유로를 넘는 일은 거의 없다.

La hora del vermut의 시간대

이 시간은 정확히 정해져 있다.

  • 시작 — 일요일 오전 11시쯤
  • 피크 — 13시~14시
  • — 점심 식사가 시작되는 14시 30분~15시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을 보통 1415시에 먹는다. 그 전 약 23시간이 버무스 타임이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만나서 가볍게 한두 잔 하면서 수다를 떨고, 그 다음 점심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평일에도 버무스를 마시긴 하지만 진짜 분위기가 사는 건 주말, 특히 일요일이다.

100년 전부터 있던 문화

이 풍습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 마드리드에서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일요일 미사 후에 카페에 모여 한 잔씩 하던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1920년대 마드리드 신문에는 "일요일 베르무트 시간에 만나기로 하자"는 구절이 일상적으로 나왔다. 거의 100년 된 약속 문화다.

스페인 내전(1936~39)과 프랑코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이 문화가 한 번 위축됐다가, 1980년대 마드리드 movida(문화 부흥기)와 함께 다시 부활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복고 문화"의 상징이 됐다.

버무스 바에서 같이 먹는 것들

버무스 한 잔만 시켜도 보통 작은 안주(tapa)가 같이 나온다. 마드리드 바의 기본 매너다.

  • 올리바스(olivas) — 올리브, 보통 안초비가 들어간 것
  • 베르베레초스(berberechos) — 새조개 통조림
  • 메히요네스 엔 에스카베체(mejillones en escabeche) — 식초에 절인 홍합
  • 파타타스 브라바스(patatas bravas) — 매콤한 소스 감자
  • 보케로네스(boquerones) — 식초 절임 멸치
  • 엔살라디야 루사(ensaladilla rusa) — 러시안 샐러드

특히 베르베레초스(새조개 통조림)와 버무스 조합이 마드리드 정통 스타일이다. 통조림 그대로 접시에 올려서 레몬 한 조각만 짜서 먹는다. 처음 봤을 때 "이게 무슨 안주인가" 했는데 막상 먹어보면 짭짤하고 쫄깃해서 버무스랑 진짜 잘 맞는다.

마드리드의 정통 버무스 바

(2026년 4월 기준 영업 중인 곳들)

  • Casa Camacho — 1928년 창업, "Yayo"라는 시그니처 칵테일이 유명. 라 라티나 옆
  • Bodega de la Ardosa — 1892년 창업, 분위기 끝장나는 노포
  • Taberna Ángel Sierra — 1917년 창업, 추에카 광장 바로 앞. 단골 할아버지들이 가득
  • Casa Alberto — 1827년 창업, 마드리드 최오래된 버무스 바 중 하나
  • Bodegas Rosell — 1920년 창업, 가족 운영

특히 카사 알베르토는 진짜 시간 여행하는 느낌이다. 19세기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벽에 옛날 광고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알아두면 좋은 스페인어

  • "Un vermut, por favor" — 버무스 한 잔 주세요
  • "¿Vermut de la casa?" — 그 집 자체 버무스 있어요? (직접 양조하는 곳 많음)
  • "Con sifón" — 탄산수 섞어서
  • "Solo, sin hielo" — 얼음 없이
  • "¿Y la tapa?" — 안주는요? (보통 자동으로 나오지만, 안 나올 때)

(참고로 "vermut"의 발음은 "베르무트". 스페인어는 끝의 't'를 살짝 발음한다)

일요일 마드리드 일정 추천

일요일 마드리드에서 버무스 시간을 제대로 즐기려면.

  • 11시 — 라스트로(El Rastro) 벼룩시장 구경 (라 라티나 동네)
  • 12시 30분 — 라 라티나의 작은 바 한 곳에서 첫 버무스
  • 13시 30분 — 두 번째 바로 이동 (하시고 매너)
  • 14시 30분 — 점심 식당으로 이동, 본격 식사

이 동선이 마드리드 사람들의 표준 일요일이다. 한 곳에 오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바를 옮겨다닌다. 한 곳에서 한 잔씩만 하고 다음 곳으로. 이게 매너이고 즐거움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나

서울에도 최근 버무스 바가 몇 곳 생겼다. 한남, 성수, 망원에서 볼 수 있다. 다만 마드리드의 그 일요일 낮 분위기 — 길에 서서 마시고,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 는 서울에서 재현하기 어렵다.

마드리드에 갈 일이 있다면, 일정을 일요일에 걸쳐서 잡자. 정오에 라 라티나에 가 있으면, 100년 된 의식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 그게 마드리드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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