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설날 일주일 전쯤 23 응우옌 후에 거리(Nguyen Hue)를 지나갔다. 평소엔 보행자 거리인데, 그날은 거대한 꽃 시장으로 변해 있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노란 꽃이 줄지어 서 있었고, 트럭에서 꽃을 내리는 사람들로 정신없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떨이꽃 시장이 어떤 의미인지 그날 알았다. 이게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1년에 한 번, 새해 운을 사러 가는 의식이다.
마이꽃과 다오꽃 — 남북의 차이
베트남 설날(Tết)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꽃이 있다.
마이꽃(Hoa Mai) — 노란색 꽃. 베트남 매화. 주로 남부에서 사용한다. 호치민, 메콩 델타 지역에서는 마이꽃이 설의 상징이다.
다오꽃(Hoa Đào) — 분홍색 꽃. 베트남 복숭아꽃. 주로 북부에서 사용한다. 하노이, 북부 지역에서는 다오꽃이 설의 상징이다.
같은 베트남이지만 남북의 기후 차이로 자라는 꽃이 다르고, 그래서 설을 상징하는 꽃도 갈린다. 하노이에 가서 노란 마이꽃을 사는 건 좀 어색하고, 호치민에서 다오꽃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에서 설은 "노란 도시"와 "분홍 도시"로 갈린다. 그게 한 나라 안의 문화 차이다.
1년 운을 결정하는 꽃
베트남 사람들에게 설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풍수와 비슷한 개념의 전통이 있다.
마이꽃은 황금색이라 부와 행운을 상징한다. 설 첫날 마이꽃이 활짝 피면 그 해 가족이 번영한다고 믿는다. 봉오리만 있고 안 핀 꽃이 가득하면, 음력 새해 첫날 아침에 활짝 펴서 새 해를 환영한다는 의미가 있다.
다오꽃은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고 한다. 옛날 전설에 의하면 동쪽 바다의 다오꽃 나무 밑에 신령이 살고 있어서, 다오꽃이 있는 집에는 악령이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설을 며칠 앞두고 모든 가정이 마이/다오꽃을 사러 간다. 거실 한가운데에 큰 화분을 두는 게 설의 핵심 의식이다. 이 꽃이 없는 설은 설이 아니다.
꽃 시장의 며칠
설 일주일 전부터 큰 도시의 주요 광장이 임시 꽃 시장으로 변한다.
호치민 — 응우옌 후에 거리, 23/9 공원, 호 티 끼 화 시장 하노이 — 항루옥(Hàng Lược) 거리, 꽝바(Quảng Bá) 꽃 시장 다낭 — 헬리오 마켓, 항 꼿(Hàng Cót) 거리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시장도 있다. 메콩 델타나 닥락에서 트럭으로 꽃이 올라오고, 도매상이 새벽에 거래한다. 일반 손님은 이른 아침부터 시장에 와서 마음에 드는 화분을 고른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작은 화분 100200만 동(510만 원)부터, 큰 나무 화분은 천만 동(50만 원) 이상까지 간다. 100년 된 다오꽃 나무는 1억 동(50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트럭에 꽃 나무 묶고 집으로
베트남 설 며칠 전 도로 풍경 중 가장 인상적인 게 이거다. 오토바이 뒤에 큰 다오꽃 나무를 묶고 가는 사람들. 나무가 거의 본인보다 큰데, 어떻게든 묶어서 가져간다.
트럭으로 사는 부유한 가정은 이런 고민이 없지만, 보통 가정은 오토바이로 운반한다. 가지가 다 펼쳐져 있어서 균형 잡기도 어렵고, 도로 폭도 좁아서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익숙한 일이다.
(참고로 외국인 관광객이 이 풍경을 보고 사진 찍으면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외국 사람 눈에는 이국적인 장면이라는 걸 안다.)
설 첫날 아침의 의식
음력 1월 1일(보통 양력 1월 말~2월 초) 아침이 베트남 설의 정점이다.
새해 첫 손님이 누구냐가 그 해의 운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걸 '쏭 다트(xông đất)'라고 한다. 보통 부유하고 운이 좋다고 알려진 친척이나 친구를 미리 부탁해서, 정해진 시간에 첫 손님으로 들어오게 한다.
집 안에는 마이/다오꽃이 활짝 펴 있어야 하고, 작은 귤(quất) 나무도 있어야 한다. 귤 나무의 노란 열매가 부를 상징한다. 그리고 빨간 봉투(li xi)에 새 돈을 넣어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나눠 준다.
이 모든 의식의 중심에 꽃이 있다. 꽃이 없으면 다른 의식들이 다 무의미해진다.
외국인이 설 시장에 가는 법
베트남 설은 보통 양력 1월 말~2월 중순. 정확한 날짜는 매년 다르다. 설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 꽃 시장이 가장 활발하다.
가장 좋은 방문 시간은 새벽 5~7시.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8시쯤 되면 시장이 가득 찬다. 사진 찍기에도 빛이 좋다.
추천:
- 사진 찍을 거면 광각 렌즈 (좁은 골목에 큰 나무가 빽빽이 있어서)
- 새벽이라 약간 쌀쌀하니 가벼운 외투
- 시장 안 식당에서 아침 쌀국수 한 그릇 (현지 분위기 만끽)
- 꽃 한 가지 살 거면 작은 귤 화분 추천 (들고 다닐 만한 크기)
설 시즌이 좋은가, 나쁜가
베트남 여행에서 설을 끼고 가는 게 좋은 결정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좋은 점:
- 1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꽃 시장 풍경
- 도시 전체가 화려하게 장식됨
- 항공권이 비수기라 저렴한 시기도 있음
나쁜 점:
- 설 당일과 이후 2~3일은 모든 가게가 닫는다
- 식당, 박물관, 상점 다 휴업
- 호치민/하노이 같은 큰 도시도 설 당일은 텅 빈다
- 가족이 다 시골로 내려가서 도시는 적막
설 며칠 전(꽃 시장 시즌)에 가면 가장 활기찬 베트남을 볼 수 있고, 설 당일에 가면 가장 조용한 베트남을 본다.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운지는 취향이다.
개인적으로는 설 일주일 전에 가서 꽃 시장만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시가 이렇게 한 가지 꽃 색깔로 뒤덮이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분홍색 하노이의 거리, 노란색 호치민의 거리. 그게 베트남이 1년에 한 번 가장 자기다워지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