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에서 처음 현지 훠궈를 먹었을 때, 10분 만에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빨간 국물 위로 마라(麻辣)의 기운이 올라오고, 입술이 얼얼해졌다. 옆 테이블 충칭 아저씨들은 셔츠를 걷어 올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웃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이해했다. 훠궈는 음식이 아니라 행사다.
훠궈의 역사, 생각보다 오래됐다
훠궈(火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2,0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우리가 아는 훠궈 문화의 형태는 청나라 시대에 정착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충칭 훠궈의 직접적인 조상은 19세기 충칭 항구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배에서 짐을 옮기는 막노동꾼들이 소의 내장(그 시절 상류층이 거들떠보지 않던 부위들)을 가져다가 강물에 끓여 먹었다. 거기에 쓰촨 특산 두반장과 고추를 잔뜩 넣어 냄새를 잡고 몸을 덥혔다. 그게 충칭 마라 훠궈의 원형이다.
싸고 못한 재료를 화끈한 향신료로 살려낸 음식이 지금은 수조 원대 산업이 됐다. 아이러니하지만, 서민 음식이 고급화되는 건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충칭 훠궈 vs 청두 훠궈
쓰촨성을 여행하다 보면 충칭과 청두 사람들이 서로 자기네 훠궈가 진짜라고 주장한다. (둘 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충칭 훠궈는 뚝심이 있다. 기름이 훨씬 많고, 매운 강도도 센 편이다. 국물보다 기름 비율이 높아서 식재료가 기름에 잠기는 느낌이다. 방어막 없이 먹으면 다음 날 고생한다는 걸 미리 경고해둔다.
청두 훠궈는 조금 더 섬세하다. 마라 향은 있되 충칭만큼 공격적이지 않고, 소스 선택도 더 다양하다. 청두 사람들은 참기름과 마늘 소스를 조합하는 것을 즐긴다.
한 가지 재밌는 차이: 충칭 훠궈는 대부분 뷔페 스타일이 아니라 단품 주문 방식이다. 청두 훠궈는 최근 뷔페 형태도 많다.
훠궈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것들
훠궈는 느리게 먹는 음식이다. 빨리 먹는 게 불가능하다. 식재료를 하나씩 넣어서 익히고, 소스에 찍어서 먹고, 국물이 졸면 물을 추가하고. 이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훠궈 테이블에서는 대화가 많아진다.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동료들끼리 두세 시간을 보낸다. 한국의 삼겹살 회식과 비슷한 사회적 기능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오랜 친구를 만나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 친해질 때 훠궈를 선택한다.
훠궈는 같은 냄비를 공유하는 행위다. 그 공유 안에서 거리가 좁혀진다.
중국에서 비즈니스 미팅이 훠궈 자리인 경우도 많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비즈니스 미팅 형태일 것이다. 땀 흘리고, 얼얼한 입술로 협상하는 거니까.
훠궈 소스의 세계
초보자들이 자주 헷갈리는 게 소스(蘸料, 잔료)다. 중국 훠궈 집에서는 보통 소스 바(料台)가 있어서 직접 조합한다.
기본 재료는:
- 참기름 (芝麻油)
- 다진 마늘 (蒜末)
- 부추꽃 절임 (韭花酱)
- 발효 두부 (腐乳)
- 땅콩 소스 (花生酱)
- 굴소스 (蚝油)
충칭 사람들은 "훠궈에 소스 많이 찍으면 훠궈 맛을 가린다"고 말한다. 그냥 기름에서 건져서 먹으면 된다고. 반면 청두나 베이징 사람들은 소스를 잔뜩 만들어서 찍는 걸 즐긴다.
이 차이로 싸우는 중국인들을 봤다. (농담처럼 싸우는 거지만, 진심이 섞여 있었다.)
훠궈 관련 중국어 표현
- 「我要一个鸳鸯锅」(wǒ yào yīgè yuānyāng guō) — 반반 냄비 주세요 (맵고 안 매운 것 반반)
- 「微辣/中辣/特辣」(wēi là / zhōng là / tè là) — 약간 매운/중간/엄청 매운
- 「帮我加汤」(bāng wǒ jiā tāng) — 물 좀 더 넣어주세요
- 「这个熟了吗?」(zhège shú le ma?) — 이거 다 익었나요?
- 「再来一瓶啤酒!」(zài lái yī píng píjiǔ!) — 맥주 한 병 더요!
마지막 표현은 훠궈 집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 중 하나다.
훠궈가 유행하는 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마라탕 집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사람들도 마라 맛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현지 충칭 훠궈는 차원이 다르다. 기회가 되면 충칭에 가서 제대로 먹어보길. 처음엔 눈물 나도, 두 번째는 또 먹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