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시(浦西)의 작은 골목, 토요일 아침 9시쯤 산책하다가 멈춰 섰다. 분홍색 곰돌이 패턴이 그려진 상하의에 폴라플리스 잠옷 바지를 입은 60대 아주머니가 슬리퍼를 끌고 와 만두집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옆에는 푸른색 줄무늬 잠옷 차림의 할아버지가 신문을 사고 있었다. 둘 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다 어색해졌다.
이게 상하이의 유명한 잠옷 외출 문화다. 90년대까지는 거의 모든 골목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다.
잠옷이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외국 여행자들은 처음 보면 "왜 저렇게 잠옷 입고 나오지?" 라고 황당해한다. 사실 상하이 사람들에게 잠옷(睡衣, 쉐이이)은 그냥 자는 옷이 아니다. 1990년대까지 잠옷은 '실내 캐주얼 웨어'에 가까웠다.
그 시기 상하이 시민들에게 잠옷은 일종의 자랑이었다. 1980~90년대만 해도 잠옷은 비교적 비싼 옷이었다. 부드러운 면, 화려한 패턴, 매끈한 재질 — 일반 옷보다 좋았다. 잠옷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어느 정도 도시 중산층의 표시였다.
잠옷 입고 거리에 나온다는 건 "이 동네는 내 거실의 연장이다" 라는 메시지였다.
상하이의 전통 주거 형태인 '롱탕(里弄)' — 좁은 골목 안에 다세대 주택이 빽빽이 모여 있는 — 에서는 가족 사이에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모호했다. 화장실이 공용이고 부엌도 공용인 집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골목이 거실의 일부가 됐다.
골목 공동체가 만든 옷차림
롱탕에서는 이웃이 가족 같았다.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 부엌에 들어와 간장을 빌려가고, 골목 끝 할아버지가 평상에 앉아 신문을 같이 읽었다. 잠옷을 입은 채로 옆집에 빨래걸이 빌리러 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거기다 80~90년대 상하이 골목에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게 도보 5분 거리에 있었다. 만두집, 쌀가게, 야채상, 약국, 우체국까지. 잠옷 차림으로 충분히 다 해결됐다.
그러다 보니 상하이만의 묘한 옷 문화가 생겼다. 잠옷이지만 너무 너덜너덜한 건 안 입고, 가능하면 새것 같고 패턴이 예쁜 걸 입는다. (참고로 핑크색 곰돌이는 진짜 흔하다.) 그게 골목에서 만나는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였다.
2010년 엑스포가 분기점이었다
상하이 잠옷 문화의 큰 전환점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다. 정부가 "외국인 손님이 많이 오는데 잠옷 입고 다니면 도시 이미지가 안 좋다" 며 단속에 나섰다.
엑스포 부지 인근 거리에는 "请勿穿睡衣出门(잠옷 입고 외출하지 마세요)"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일부 자원봉사자들은 골목을 돌며 잠옷 차림 노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솔직히 좀 무리한 캠페인이었다.
이때 상하이 시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 젊은 세대는 "이미 시대가 변했다, 잠옷은 외출복이 아니다" 라며 정부 입장에 동조했고, 나이 든 세대는 "수십 년 살아온 내 골목에서 내가 어떤 옷을 입든 무슨 상관이냐" 며 반발했다.
도시화로 자연스럽게 줄어든 풍경
엑스포 단속보다 더 큰 변화는 도시 재개발이었다. 2000년대 이후 푸동(浦東)을 비롯한 신도시가 빠르게 들어서면서 롱탕은 빠르게 사라졌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 간 사람들은 골목 같은 공동체 공간이 없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로비에서 모르는 이웃을 만나야 하는 환경이 됐다. 잠옷 차림으로 그러긴 어렵다. 자연스럽게 잠옷 외출 문화가 줄었다.
지금도 잠옷 외출이 남아있는 동네는 푸시의 옛 롱탕 지역, 그리고 변두리 신축 아파트가 적은 곳들이다. 토요일 아침에 그런 동네를 걸어보면 여전히 분홍 잠옷 할머니들이 만두를 사고 있다.
외국인이 잘 모르는 디테일
잠옷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디테일 몇 가지.
-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자주 입는다. 통계는 정확히 없지만 거리에서 관찰해 보면 명백하다. 남자는 트레이닝복 정도까지가 흔하다.
- 여름과 겨울 차림이 다르다. 여름엔 얇은 면 잠옷, 겨울엔 두꺼운 폴라플리스 풀세트 + 슬리퍼. 시즌 룩이 있다.
- '편의점 거리(便利店一街)' 안에서만. 자기 동네에서 도보 5~10분 안에서만 잠옷 차림으로 다닌다. 지하철까지 잠옷 차림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상하이만의 풍경이다. 베이징, 광저우, 청두 같은 다른 대도시에는 이 정도로 잠옷 외출이 흔하지 않다.
사라지면서 남는 풍경
지금 상하이는 외국 명품 브랜드와 인스타용 카페가 가득한 도시지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잠옷 입은 노인들이 산책하고 있다. 신기하게 두 풍경이 한 도시에 공존한다.
개인적으로 상하이를 처음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이 풍경이었다. 황푸강 야경보다, 신톈디(新天地) 카페보다, 잠옷 입고 슬리퍼 끌면서 만두를 사 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도시가 너무 빠르게 변할 때 그런 일상의 풍경이 더 귀해진다.
상하이에 갈 일이 있다면 푸시의 좁은 골목들을 한 번 걸어봤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어쩌면 그 잠옷 풍경이 곧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