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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연주자가 되려면 통과해야 하는 오디션 — MUNY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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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연주자가 되려면 통과해야 하는 오디션 — MUNY 시스템

2026-05-01·8분 읽기

지하철 14번가 환승 통로에서 첼로 소리가 들려서 멈춰 섰다. 검은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묶은 여자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는 멈춰서 듣고, 동전을 케이스에 던지고 다시 걸었다.

연주자 옆 작은 배너에 "MUNY"라고 쓰여 있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 — MTA — 가 공식적으로 인증한 음악가라는 뜻이다. 처음 알았다.

"그냥 아무나 연주하는 줄 알았다"

뉴욕 지하철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다 자유롭게 들어와 연주하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두 종류가 있다. 무허가로 그냥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MTA의 공식 프로그램 'Music Under New York(MUNY)'에 합격한 사람들.

MUNY는 1985년에 시작됐다. 지금은 약 350팀이 등록되어 있고, 25개 정도의 정해진 연주 자리(perform spot)에서 매년 약 7,500회 공연을 한다. 그랜드 센트럴, 타임스 스퀘어, 콜럼버스 서클, 펜 스테이션 같은 주요 환승역의 좋은 자리들이다.

무허가 연주는 막지 않는다. 다만 MUNY 멤버에게는 우선권과 좋은 위치가 보장된다.

이 차이가 크다. 좋은 자리에는 통행량이 많고 음향도 괜찮다. 하루 만에 수백 달러를 벌 수도 있다. 그래서 매년 오디션 경쟁이 치열하다.

오디션은 진짜 빡세다

MUNY 오디션은 1년에 한 번 열린다. 보통 5월쯤. 지원자가 약 200~300팀 모이고, 그중 약 70팀 정도만 새로 합격한다. 합격률 25% 안팎.

오디션은 실제 지하철역이 아니라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어느 큰 홀에서 진행된다. 심사위원은 MTA 직원, 음악 전문가, 기존 MUNY 연주자, 음악 평론가까지 약 20명. 각 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단 5분이다.

5분 안에 두 곡을 연주해야 한다. 장르 제한은 없다. 클래식, 재즈, 힙합, 케이준, 스틸 드럼, 안데스 음악, 가끔은 무반주 합창단. 다양성도 평가 기준 중 하나라서 비슷한 장르가 너무 몰리면 떨어질 수 있다.

심사 기준은 음악적 완성도뿐이 아니다. 지하철 공간에서의 음향 적응력, 시끄러운 환경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무대 매너, 그리고 안전 의식 —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 능력 — 까지 본다.

무대 매너의 의외성

MUNY 오디션 영상을 몇 개 봤다. 같은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라도 콘서트홀에서 잘하는 사람이 지하철에서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게 흥미롭다.

지하철은 음향 흡수가 거의 없는 콘크리트 공간이라 잔향이 길고 소음이 강하다. 그래서 약하고 섬세한 곡은 묻혀버린다. 심사위원들은 "강하고 명확한 곡, 멀리서도 들리는 곡, 사람들이 5초 안에 멈춰서고 싶게 만드는 곡"을 선호한다.

또 하나, 연주자가 청중과 눈을 마주치는지를 본다. 무대 위 연주자는 관객을 무시할 수 있지만 지하철 연주자는 그러면 안 된다.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면 고개를 끄덕여야 하고, 누가 멈춰서 들으면 미소로 응답해야 한다. (참고로 이건 단순한 매너가 아니라 실제 수입에 영향을 준다.)

합격하면 어떻게 될까

합격하면 매월 사이트(웹 포털)에서 연주 자리를 신청한다. 인기 자리는 추첨이고, 하루에 보통 2~3시간 단위로 배정된다. MTA가 공식 발급하는 배너를 받아서 연주할 때 옆에 세워둔다.

수입 면에서, 좋은 자리는 시간당 50~150달러 정도가 평균이라고 한다. 어떤 베테랑은 한 달에 5,000달러 이상 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래도 풀타임 음악가들에게 이건 보조 수입에 가깝다.

오히려 더 큰 가치는 노출이다. 14번가에서 연주하다가 음반사 직원의 눈에 띄어 데뷔한 가수, 아이폰으로 찍힌 영상이 유튜브에서 천만 뷰를 넘어 콘서트 투어로 이어진 사례 — 진짜 있다. 첼리스트 데이먼 그랜빌(Damon Greenville)은 MUNY로 시작해서 카네기 홀까지 갔다.

도시가 음악을 운영한다는 것

서울 지하철에도 가끔 연주자들이 있다. 그런데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보통 지자체가 짧은 기간만 허가를 내주거나, 아예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은 다르게 접근했다. 지하철 음악은 도시 풍경의 일부라고 인정했고, 그걸 그냥 두기보다 시스템화했다. 결과적으로 지하철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 통근자든 관광객이든 — 매일매일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경험을 한다. 그게 도시의 분위기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처음 뉴욕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이거였다. 잘 차려입은 출근족 사이에서 누군가 색소폰을 부는 풍경. 정신없이 바쁜 도시인데 음악이 끊기지 않는다는 게.

다음에 뉴욕 지하철에서 연주자를 만나면, 옆에 'MUNY' 배너가 있는지 한번 봐도 좋다. 있다면 1년에 한 번뿐인 오디션을 뚫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동전이든 지폐든, 던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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