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섬 중부, 코르테(Corte)라는 산골 마을. 카페에 들어가서 "Bonjour, un café s'il vous plaît(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했더니 주인이 답했다. "Bongiornu! Subitu(Bongiornu! 곧 드릴게요)."
처음엔 이탈리아어 한 줄 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코르시카어(corsu)였다. 프랑스 영토인데 인사말은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섞여 있고, 분위기도 어쩐지 토스카나의 산골 마을 같았다.
코르시카는 행정상 분명히 프랑스다. 그런데 가본 사람들은 다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는다. "여기 진짜 프랑스 맞나?"
지리부터 보자면
코르시카섬은 지중해에 떠 있다. 위치를 좌표로 보면 흥미롭다.
- 프랑스 본토 니스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다
-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에서는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 이탈리아 본토(투스카니 해안)에서는 약 90km
지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코르시카는 이탈리아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도 행정적으로는 프랑스. 이게 역사 때문이다.
500년 동안 제노바의 식민지였다
코르시카는 1284년부터 1768년까지 약 500년 동안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토스카나 방언을 기반으로 한 코르시카어가 자리잡았다.
그러다 1768년, 제노바가 재정 위기에 빠지면서 코르시카섬을 프랑스에 팔아넘긴다. 그 다음 해인 1769년에 코르시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이름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은 태어난 시점 기준으로 "프랑스가 된 지 1년 된 섬"의 사람이었다. 본인이 자라면서 받은 교육은 코르시카어와 이탈리아어가 더 자연스러웠고, 프랑스어는 나중에 배운 외국어 같은 것이었다.
이 사실 때문에 코르시카는 정체성이 복잡하다. 프랑스의 일부이지만, 문화적으로는 이탈리아와 더 가깝다. 지금도 코르시카 독립 운동이 존재한다.
코르시카어 — 살아있는 토스카나 사촌
코르시카어(corsu)는 프랑스어가 아니다. 이탈리아어 토스카나 방언과 가까운 로망스어다.
기본 인사말 비교를 보자.
- 안녕하세요 — 프랑스어 Bonjour / 이탈리아어 Buongiorno / 코르시카어 Bongiornu
- 고맙습니다 — Merci / Grazie / Grazie ('이탈리아어와 똑같다')
- 잘 가요 — Au revoir / Arrivederci / A vedeci
- 잘 자요 — Bonne nuit / Buona notte / Bona notte
이걸 보면 코르시카어가 프랑스어보다 이탈리아어와 훨씬 가깝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지금 코르시카에서 일상 언어는 프랑스어다. 학교, 행정, 미디어 모두 프랑스어다. 코르시카어는 주로 노인 세대가 쓰고, 산골 마을일수록 자주 들린다. 다만 1990년대 이후 학교에서 코르시카어를 가르치기 시작해서 젊은 세대도 어느 정도 한다.
산골 마을에 가야 진짜 코르시카가 보인다
해안가 도시(아작시오, 바스티아)는 솔직히 그냥 프랑스 같다. 관광객이 많고 인프라가 프랑스식이다. 진짜 코르시카 정체성을 보려면 내륙 산골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추천하는 산골 마을 몇 곳.
- Corte(코르테) — 옛 코르시카 독립국의 수도였던 곳. 대학과 박물관이 있다
- Sartène(사르테네) — 이탈리아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가장 코르시카다운 마을"이라 한 곳
- Pigna(피냐) — 200명 사는 작은 예술가 마을. 음악 페스티벌
- Speloncato(스페론카토) — 17세기 모습이 그대로 남은 마을
- Bonifacio(보니파시오) — 사르데냐가 보이는 절벽 마을
(참고로 코르시카 도시 이름이 이탈리아어처럼 들리는 게 우연이 아니다. 지명 자체가 이탈리아 시기에 만들어졌다)
산골 음식 — 돼지, 치즈, 밤
코르시카 음식은 프랑스 본토와 완전히 다르다. 풍토가 척박해서 산에서 키울 수 있는 것 위주로 발달했다.
- Charcuterie corse — 코르시카 햄, 살라미. 야생 도토리 먹은 흑돼지로 만든다
- Brocciu — 양젖 또는 염소젖 리코타. 코르시카 대표 치즈
- Pulenta — 옥수수가 아니라 밤 가루로 만든 폴렌타. 11~12월 별미
- Soupe corse — 콩과 채소 수프. 한 그릇이 한 끼 식사
- Fiadone — 브로치우 치즈로 만든 치즈케이크. 레몬 향
특히 밤(châtaigne) 가루로 만든 음식이 많다. 19세기 코르시카 산골에서 밀이 잘 안 자라서 밤이 주식 중 하나였다. 빵, 폴렌타, 케이크까지 다 밤으로 만든다. 처음 먹어 보면 단맛과 쌉쌀함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코르시카에서 알아두면 좋은 표현
프랑스어가 통하지만 코르시카어 한두 마디 알면 환영받는다.
- "Bongiornu" — 봉주르누, 안녕하세요
- "Grazie" — 그라치에, 고맙습니다
- "Cumu va?" — 쿠무 바, 잘 지내요?
- "Bè" — 베, 좋아요
- "A vedeci" — 아 베데치, 안녕히 가세요
산골 마을 카페에서 "Bongiornu"라고 인사하면 주인이 진심으로 반가워한다. 프랑스어로 "Bonjour"하는 관광객은 많지만, 코르시카어로 인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코르시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행정 경계와 문화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지역들이 세계에 많다. 코르시카는 그중에서도 분명한 케이스다. 프랑스 여권을 갖고 있지만, 정체성은 코르시카,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탈리아.
이 섬에 가면 "프랑스를 한 번 더 본다"는 느낌보다 "프랑스의 다른 얼굴을 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솔직히 첫 코르시카 여행에서 받은 인상은 "여기는 프랑스라기보단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산골 같다"였다.
남부 프랑스 여행 일정에 코르시카를 한번 끼워 넣어 보자. 니스에서 페리로 5시간이면 닿는다. 같은 프랑스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게, 의외로 큰 충격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