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지하철 4호선이 멈췄다. 가는 길에 버스를 갈아탔는데 그 버스도 절반쯤만 운행하고 있었다. 호텔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오늘 파업이에요. 알고 계셨죠?"
알 리가 없지.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그 새벽에 도착한 사람이 어떻게 파업 일정을 안다.
그날 저녁에 카페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프랑스에 왔으면 파업은 일정의 일부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파업은 헌법상의 권리다
프랑스 헌법 전문에는 파업권(droit de grève)이 명시돼 있다. 1946년 제4공화국 헌법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 즉, 파업은 일종의 정부에 대한 항의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으로 분류된다.
이게 프랑스 노동 문화의 출발점이다. 파업은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다. 협상 카드 중 하나가 아니라 협상 그 자체다.
프랑스에서 파업은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이다.
이 개념 차이가 외국인에게 가장 큰 충돌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파업이 마지막 수단처럼 인식되는데, 프랑스에서는 첫 번째 카드처럼 쓰인다. 협상 시작 전에 일단 한 번 멈춘 다음에 대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1968년 5월의 그림자
프랑스 파업 문화의 결정적인 순간은 1968년 5월(Mai 68)이다.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해서 노동자들이 합류하면서 한때 1100만 명 — 프랑스 노동자의 거의 3분의 2 — 이 파업에 동참했다.
드골 대통령이 도망갈 정도였다. 결국 정부가 양보해서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노조 권리 강화를 약속했다.
이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거리에 나가면 정부가 양보한다." 이 학습이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매번 큰 정책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시위와 파업이 반복된다.
(참고로 1968년 5월의 또 다른 결과는 학생 운동의 정치화였다. 지금도 프랑스 대학생들이 큰 사회 이슈에 적극적인 건 그 영향이다.)
가장 자주 멈추는 분야
통계를 보면 프랑스 파업의 주요 대상은 다음과 같다.
- 공공 교통 — SNCF(국철), 파리 지하철 RATP, 항공사 에어프랑스
- 공무원 — 교사, 우체부, 청소부
- 에너지 — 정유소, 전력 노조 (CGT 산하)
- 농민 — 트랙터로 도로 막기
여행객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게 교통 파업이다. 파리에서 일주일 머무는데 하루는 지하철 일부 노선이 안 다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좋은 소식은 파업 일정이 보통 미리 공지된다는 것. SNCF나 RATP 홈페이지를 보면 며칠 전부터 "X월 X일 파업 예정"이라고 뜬다. 일정이 잡히면 그 사이에 미리 동선을 짜둘 수 있다.
"파업하면 더 나빠지는 거 아냐?"
처음 프랑스 친구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그가 진지하게 답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래.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가진 권리들의 절반 이상은 파업으로 얻어낸 거야."
35시간 노동제, 5주 유급 휴가, 빠른 정년, 무료 의료 — 이런 것들이 그냥 정부 선물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거다. 매번 누군가 거리로 나가서 얻어낸 결과라는 의식이 강하다.
이 의식이 한국이나 미국과 다른 점이다. 한국에서 파업이 "민폐"로 여겨지는 정서가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내가 누리는 휴가의 한 시간은 1968년의 누군가 덕분"이라는 정서가 있다.
물론 모든 프랑스인이 파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매번 짜증 내는 사람도 많다. 다만 짜증 내면서도 "이건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 점이 다르다.
외국인이 적응하는 법
프랑스 여행에서 파업을 만났을 때 대처법:
- 여행 전 일정 확인 — sncf.com, ratp.fr에서 파업 예고 검색
- 하루는 도보/자전거 일정으로 — 파리는 의외로 걸어 다닐 수 있다
- 공항 가는 날은 여유 있게 — 파업이 항공편 결항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 현지인도 같이 짜증 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파업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서 1시간 걸어가는 동안 만난 파리 사람들이었다. 다들 이어폰 끼고, 빵집에 잠깐 들러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익숙한 거다.
한국 시각에서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프랑스 시각에서 보면 이게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누가 더 옳은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파리에서 일주일 살아본 뒤로 "왜 또 파업이야"라고 짜증 내는 마음이 좀 줄어들긴 했다. 그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고, 외국인은 잠깐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