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 구항(Vieux-Port). 점심 시간에 늦었다. 12시 50분. 부야베스(bouillabaisse)를 시키려면 전날 예약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무작정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메뉴판을 가져오면서 한마디 했다. "부야베스는 안 돼요. 오늘 자리는 다 차서. 내일 오면 만들어드릴게."
내일은 마르세유를 떠나는 날이었다. 결국 그 식당에서 다른 걸 시키고, 다음 날 새벽 일찍 다른 식당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어렵게 먹은 부야베스 한 그릇이 80유로였다. (한국 돈으로 12만 원쯤.)
비싸다. 그런데 한 입 먹고 나서 이 가격이 이해됐다.
부야베스는 사실 어부의 음식이었다
지금 부야베스는 마르세유의 대표 고급 요리다. 70~100유로짜리가 흔하다. 그런데 원래 부야베스는 어부들이 팔고 남은 잡어로 만들던 가난한 음식이었다.
19세기 마르세유 항구. 어부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작은 물고기들이 남았다. 비늘이 거칠고, 가시가 많고, 모양이 못생긴 물고기들. 이걸 큰 솥에 다 넣고 끓였다. 토마토, 양파, 마늘, 사프란, 펜넬을 넣고.
이게 부야베스의 원형이다. 이름도 "끓이고(bouillir) 줄여라(abaisser)"에서 왔다. 어부들이 먹기 위해 끓이다가 불을 줄이라는 의미.
가난한 음식이 어떻게 70유로가 됐을까.
진짜 부야베스의 11가지 규칙
마르세유에는 1980년 만들어진 "부야베스 헌장(Charte de la Bouillabaisse)"이라는 게 있다. 진짜 부야베스가 갖춰야 할 조건들.
- 반드시 들어가야 할 4가지 생선: 라스카스(rascasse, 쏨뱅이), 곤가르(grondin), 콘고르(congre, 곰장어), 위베이(vive)
- 추가로 들어갈 수 있는 생선: 셍모니에르, 라스카스 블랑, 아라이그네 등
- 사프란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 토마토, 마늘, 펜넬, 양파, 올리브 오일이 기본
- 국물과 생선을 따로 서빙해야 한다
- 빵과 루이유(rouille, 매운 마요네즈), 그뤼에르 치즈가 같이 나온다
이 헌장은 가짜 부야베스가 너무 많아져서 만들어진 거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마르세유 어떤 식당이든 부야베스를 팔았는데, 진짜 마르세유 부야베스가 아닌 게 많았다.
진짜 부야베스 한 그릇에는 4종류 이상의 생선, 신선한 사프란, 그리고 어부의 시간이 들어 있다.
80유로짜리가 보여주는 것
내가 먹은 부야베스는 두 코스로 나왔다.
1코스 — 국물 주황빛이 도는 진한 수프. 옆에 마늘로 문지른 빵, 루이유 소스(붉은 매운 마요네즈), 그리고 그뤼에르 치즈를 강판에 갈아 줬다. 빵에 루이유를 발라 치즈를 뿌리고 수프에 적셔 먹는다.
이 수프 한 모금이 부야베스의 정체였다. 사프란의 향, 토마토의 단맛, 마늘과 펜넬, 그리고 생선 뼈에서 나온 깊은 국물.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균형 잡혀 있다.
2코스 — 생선 주인이 큰 접시에 통째로 익힌 생선들을 가져와서 테이블 옆에서 직접 발라줬다. 5종류 생선이 들어 있었다. 살이 단단한 것, 부드러운 것, 약간 단맛이 도는 것. 다 다른 식감.
먹으면서 생선들의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다. 라스카스의 단단한 살, 곤가르의 부드러운 살, 콘고르의 기름진 풍미. 이 차이가 부야베스의 핵심이었다.
식당 고를 때 주의할 점
마르세유에서 부야베스 식당을 고를 때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 30유로 이하는 가짜다 — 진짜 부야베스 재료비를 생각하면 60유로가 최저선
- 즉석 주문 안 받는 식당이 좋다 — 진짜 부야베스는 30분 이상 끓여야 한다
- 메뉴에 "부야베스 헌장 가입"이라고 쓰여 있는 식당이 안전하다
- 구항보다는 좀 떨어진 식당이 더 정통일 때가 많다 — 관광객 식당과 현지 식당이 다르다
추천받는 곳은 보통 르 미라마(Le Miramar), 셰 푸퐁(Chez Fonfon), 르 슈크르 살레(Le Sucre Salé) 같은 곳이다. 다 비싸지만 헌장에 가입한 식당들이다.
(참고로 부야베스는 보통 두 명 이상이 시킨다. 한 명용도 가능하긴 한데 두 명용이 비율이 더 좋다.)
마르세유에 가야 진짜다
파리에도 부야베스를 파는 식당이 있다. 그런데 마르세유 사람들은 단호하다. "마르세유 밖에서 만든 건 부야베스가 아니다."
이유가 분명하다. 부야베스에 들어가는 라스카스 같은 생선은 지중해 마르세유 앞바다에서 새벽에 잡힌 게 아니면 맛이 다르다. 사프란도 신선해야 한다. 올리브 오일도 프로방스 산이 좋다. 다 이 동네에서 가까운 재료들이다.
(이건 와인을 부르고뉴에서 마시는 게 다른 것과 비슷하다. 같은 와인이라도 그 동네에서 마시는 맛이 다르다.)
어부의 음식이 고급 요리가 된 이유
부야베스가 비싸진 이유는 단순하다. 잡어가 더 이상 잡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흔하던 라스카스 같은 생선이 지금은 어획량이 줄었다. 사프란도 비싸졌다. 부야베스 만드는 시간이 30분~1시간 걸린다. 진짜 마르세유 부야베스를 만드는 셰프 수가 점점 줄고 있다.
그래서 80유로다. 가난한 어부의 음식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그 가격을 내야 한다.
마르세유에 가게 된다면, 부야베스 한 번은 제대로 먹어보길 권한다. 80유로 어치의 식사, 80유로 어치의 역사. 그게 마르세유의 가장 정직한 한 그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