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Rennes) 시내의 작은 식당. 메뉴판에 "Galette complète" — 12유로. 옆 사람들이 큰 접시에 동그란 갈색 갈레트를 먹고 있었고, 다 같이 작은 도자기 컵에 음료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와인이 아니었다.
주인이 와서 한마디 했다. "갈레트와 함께 마실 음료는요?" 와인이 나올 줄 알았는데 메뉴를 보니 사이다(cidre)가 거의 다였다. 사과로 만든 약한 술. "뭘 추천하세요?" 했더니 "갈레트는 사이다와 마셔야 해요"라고 했다.
이 한 끼가 브르타뉴라는 지역에 대해 많은 걸 가르쳐줬다.
갈레트는 크레페가 아니다
처음 갈레트 사진을 보면 크레페와 똑같이 생겼다. 동그랗고 얇은 부침개 같은 모양. 그런데 두 음식은 완전히 다르다.
크레페(crêpe) — 밀가루로 만든다. 색이 노란빛,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
갈레트(galette) — 메밀(blé noir)로 만든다. 색이 짙은 갈색, 거친 식감, 짭짤한 식사.
브르타뉴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한다. 크레페는 디저트로, 갈레트는 메인으로. 한 식당에서 둘 다 시키는 게 보통이다. 갈레트로 식사하고, 크레페로 후식.
(파리에서 "크레페"라고 부르며 짠 갈레트를 파는 가게도 있는데, 브르타뉴 사람들은 약간 답답해한다. 다른 음식이라는 거다.)
왜 메밀이었나
브르타뉴는 프랑스 북서쪽 끝, 대서양 쪽 반도다. 토양이 척박하고 비가 많이 온다. 밀이 잘 안 자란다.
그런데 메밀은 잘 자란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고, 짧은 시간에 수확할 수 있고, 수분이 많은 환경을 견딘다. 16세기쯤 동유럽에서 전해진 메밀이 브르타뉴 농민들에게 구원자였다.
가난한 농민들이 메밀가루로 만든 부침개가 갈레트의 시작이다. 처음에는 그냥 메밀가루와 물, 소금으로 만들었다. 굽고 나면 보존도 잘 됐다. 농사 일을 나갈 때 들고 다니기 좋았다.
브르타뉴 갈레트는 사실 가난한 농민의 도시락이었다.
20세기 중반부터 갈레트가 식당 메뉴에 본격적으로 올라왔다. 그 전까지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었다.
갈레트 콩플레트 한 장의 균형
가장 기본 갈레트가 "갈레트 콩플레트(galette complète)"다. 햄, 치즈, 계란이 들어간 갈레트. 단순한데 완성도 있다.
만드는 방식이 중요하다.
- 큰 둥근 철판(billig)을 250도까지 달군다
- 반죽을 한 국자 부어 둥글게 펴는데, 이게 동그랗게 펴지는 게 기술이다
- 가장자리부터 굳기 시작하면 햄, 치즈, 계란을 올린다
- 갈레트 네 변을 사각형으로 접는다 — 가운데 노른자가 보이도록
- 노른자가 살짝 익을 때 불에서 내린다
다 만든 갈레트는 사각형 안에 동그랗게 보이는 노른자, 녹은 치즈, 햄이 보이는 모양이다. 한가운데 노른자를 깨면서 먹는 게 정석이다.
사이다와 마셔야 하는 이유
갈레트와 사이다(cidre)의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둘 다 브르타뉴의 토양이 만든 음식이다.
브르타뉴는 사과나무가 잘 자란다. 사이다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가벼운 술. 알코올 도수 2~6도 정도. 와인보다 약하고, 맥주보다 가볍다. 약간 시큼하고, 약간 거품이 있다.
이 사이다가 갈레트의 풍미와 잘 맞는다. 메밀의 거친 풍미를 사이다의 산미가 깔끔하게 잡아준다. 무거운 식사가 가볍게 느껴진다.
브르타뉴 사람들은 사이다를 와인 잔이 아니라 작은 도자기 컵(bolée)에 따라 마신다. 손잡이가 없는 컵. 이게 또 브르타뉴 식이다. 아마 옛날 가난한 농민들이 와인 잔이 없어서 도자기 컵에 마시던 게 전통이 됐을 것이다.
크레프리(Crêperie)는 식당이다
브르타뉴에서 갈레트와 크레페를 파는 식당을 크레프리(crêperie)라고 부른다. 이름은 크레프리지만 실제로는 갈레트가 메인이다.
전형적인 크레프리에서 한 끼는 이렇다.
- 갈레트 한 장 (햄&치즈, 또는 좀 더 화려한 거)
- 사이다 한 잔
- 크레페 한 장 (디저트, 잼이나 캐러멜)
총 20유로 안팎. 가성비 좋은 식사다. 파리 식당과 비교하면 절반 가격이다.
(개인적으로는 점심에 크레프리 한 번 가는 게 브르타뉴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경험 중 하나다. 비싸지 않고, 맛있고, 분위기가 편안하다.)
브르타뉴와 프랑스 사이
브르타뉴는 프랑스의 일부지만, 사실 프랑스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1532년에야 정식으로 프랑스 왕국에 편입됐다. 그 전까지는 독립 공국이었다.
이 역사가 음식, 언어, 문화에 다 남아 있다. 브르타뉴어(breton)는 켈트 계열 언어로, 프랑스어와 완전히 다른 언어다. 지금도 마을 노인들은 브르타뉴어를 쓴다. 도로 표지판도 두 언어로 쓰여 있다.
음식도 그렇다. 갈레트, 사이다, 카라멜 뵈르 살레(소금 캐러멜), 키냐만(kouign-amann, 버터 페이스트리). 다 브르타뉴 고유의 음식들이다.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
파리에서 가는 길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TGV로 1시간 30분. 렌(Rennes)에 도착한다. 렌에서 갈레트를 한 번 먹고, 더 가서 생말로(Saint-Malo) 같은 해변 도시로 갈 수도 있다.
브르타뉴를 제대로 보려면 4~5일은 잡아야 한다. 갈레트, 사이다, 해안 절벽, 작은 항구 마을. 프랑스 안의 다른 나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음에 프랑스 일정에 하루 이틀 여유가 있다면, 파리만 보지 말고 브르타뉴까지 가보길 추천하고 싶다. 갈레트 한 장과 사이다 한 잔의 가치는 거기 가야 진짜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