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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약국에서 사 오는 화장품 — 왜 한국 사람들이 캐리어를 비워가는가
🇫🇷 프랑스어

파리 약국에서 사 오는 화장품 — 왜 한국 사람들이 캐리어를 비워가는가

초록 십자가 간판 아래에 들어가면 화장품 가게가 펼쳐진다. 파리 약국이 한국 여행자에게 쇼핑 성지가 된 이유.

2026-04-30·8분 읽기

처음 파리에 갔을 때 친구가 부탁한 게 약국 화장품이었다.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파리 어디든 가면 약국이 있어. 거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막상 가니까 정말 그랬다. 한 블록에 약국이 두세 개씩 있고, 다 들어가면 한국에서 본 그 화장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날 사 온 게 너무 많아서 캐리어 무게 초과로 추가 요금을 냈다. 그게 첫 파리 약국 경험이었다.

왜 약국에 화장품이 있는가

이게 한국 사람에게는 좀 의아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약국은 약을 사는 곳이고, 화장품은 올리브영이나 백화점에서 산다. 프랑스는 다르다.

프랑스에서 약국(pharmacie)은 더 넓은 개념이다. 처방약뿐 아니라 일반 의약품, 의료 기기, 그리고 '코스메티크 데르마톨로지크(cosmétique dermatologique)' — 직역하면 피부과 화장품 — 까지 다 판다.

이 카테고리가 한국에서 말하는 '더모코스메틱'이다. 의약품 수준의 임상 시험을 거친 화장품들. 향료가 적고, 알러지 유발 성분을 줄이고, 임상 결과로 효과를 입증한 제품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비싼 백화점 화장품 대신 약국에서 더모코스메틱을 산다. 그게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들

한국 여행자들이 캐리어에 쓸어 담는 브랜드는 보통 정해져 있다.

라로슈포제(La Roche-Posay) — 시카플라스트, 안티헬리오스 자외선 차단제, 토레인 토너. 민감성 피부에 강하다.

아벤느(Avène) — 온천수 미스트, 시카발므. 피부과에서 처방 받는 사람도 있다.

비쉬(Vichy) — 미네랄 89, 리프트액티브. 안티에이징 라인이 강점.

누리시아(Nuxe) — 멀티 오일(Huile Prodigieuse), 콜드 크림. 향이 좋다.

앙브리올리스(Embryolisse) — 라이트 크림 콘센트레(Lait-Crème Concentré). 메이크업 베이스로도 쓰는 다용도 크림.

비오데르마(Bioderma) — 크레알린 H2O 클렌징 워터. 한국에서도 유명한데 가격이 절반 이하.

클로란(Klorane) — 드라이 샴푸. 오트밀 라인이 인기.

이 정도가 빅 8 정도. 가격은 한국 가격의 30~60% 수준이다. 환율과 면세를 감안하면 거의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시티팜 vs 동네 약국

파리에서 약국 가격이 다 같지 않다. 큰 차이가 난다.

시티팜(Citypharma) — 6구의 거대 할인 약국. 두 층 짜리 매장이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가격이 정가의 30~50% 할인된 경우가 많다. 다만 줄이 길고 정신없다.

라파예트 약국(Pharmacie de la Place de la République) — 또 다른 대형 할인점. 시티팜보다 한산하다.

동네 약국 — 정가에 가깝다. 가끔 세일을 하지만 시티팜보다는 비싸다.

진심으로 쇼핑이 목적이라면 시티팜이 답이다. 다만 평일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가는 게 좋다. 주말 오후는 거의 줄을 서야 한다.

(참고로 시티팜은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 가능하고, 한국어 메모를 보여줘도 직원이 안내해준다. 단골 외국인 손님이 워낙 많아서 익숙하다.)

면세(Détaxe) 받는 법

100유로 이상 한 매장에서 사면 면세 환급을 받을 수 있다. 보통 12% 정도가 돌아온다.

방법:

  1. 결제 시 직원에게 "Détaxe, please"라고 말한다
  2. 여권을 보여준다
  3. 면세 서류(formulaire de détaxe)를 받는다
  4. 공항 출국 전에 PABLO 키오스크에서 바코드를 스캔한다
  5. 카드 환급은 자동, 현금 환급은 환전소 가서 받음

시티팜에서 한 번에 100유로 넘기는 어렵지 않다. 환급액이 10~20유로 정도라 충분히 가치 있다.

추천 쇼핑 동선

파리에 4~5일 머문다면 추천 동선:

  • 1일차: 시티팜에서 한 번에 다 사기 (브랜드 리스트 미리 정리)
  • 마지막날: 못 산 거나 추가로 사고 싶은 거 동네 약국에서 보충
  • 공항 가는 날: 면세 키오스크에서 바코드 스캔

리스트를 미리 한국에서 만들어 가면 시간이 절약된다. 시티팜에 가서 직원에게 보여주면 통째로 가져다 준다.

(주의: 약국 화장품도 유효 기간이 있다. 자외선 차단제처럼 쓸 양이 많은 건 괜찮지만, 잘 안 쓰는 크림은 한 번에 5개씩 사면 결국 다 못 쓴다.)

의외의 발견 — 약국에서 약도 산다

이거 농담 같지만 한국 여행자들이 약국에서 진짜 '약'은 잘 안 산다. 그런데 의외로 살 만한 것들이 있다.

  • 두통약(Doliprane) — 타이레놀의 프랑스 버전, 처방 없이 살 수 있다
  • 알러지약(Cetirizine, Loratadine 등) — 봄에 파리 가면 꽃가루가 심하다
  • 위장약(Smecta) — 여행 중 배탈 났을 때 강력 추천

영어로 "I have a headache"라고 하면 직원이 적당한 약을 골라준다.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이 한국보다 종류가 많다.

솔직히 첫 파리에선 화장품만 사 왔는데, 두 번째 파리부터는 가족 두통약, 위장약까지 같이 사 온다. 한국에서 사는 가격의 절반 정도라 한 번 사두면 6개월씩 쓴다.

다음 파리에 가면 약국 한 군데는 꼭 들러보길. 에펠탑 입장료보다 약국 한 시간이 가성비가 더 좋을 수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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