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카페는 단순한 커피집이 아니다
파리에서 카페(Café)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가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파리의 카페는 수백 년간 지식인, 예술가, 혁명가,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제2의 거실이었습니다. 볼테르, 루소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부터 헤밍웨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20세기 지성들까지, 파리 카페에서 사고하고 글을 쓰고 논쟁했습니다.
현재 파리에는 약 7천 개 이상의 카페가 있습니다. 어느 골목에 들어가도 카페 하나쯤은 있고, 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파리지앵의 일상입니다. 카페에 홀로 앉아 한 잔의 커피나 와인을 시켜놓고 몇 시간씩 책을 읽거나 일하는 모습은 파리의 전형적 풍경입니다.
한국의 카페 문화와 다른 점은 속도입니다. 파리 카페에서는 빨리 마시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천천히 흘려 보내는 것이 미덕입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어도 직원이 재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여유가 파리 카페의 본질입니다.
파리 카페의 역사
파리 카페의 역사는 17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86년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코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가 연 카페 프로코프(Le Procope)가 파리 최초의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카페는 현재도 영업 중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중 하나로 꼽힙니다.
18세기에 카페는 계몽주의 사상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볼테르,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 같은 철학자들이 카페 프로코프에서 만나 토론하며 백과전서(Encyclopédie)의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직전에는 정치적 담론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1789년 7월 12일 저널리스트 카미유 데물랭이 카페 드 푸아의 테이블 위에 올라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19세기 오스만 남작의 파리 대개조 사업으로 넓은 대로가 만들어지면서 카페 테라스 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때부터 카페는 단순한 실내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 속에 녹아든 사회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의 카페들은 세계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습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조이스, 거트루드 스타인 같은 인물들이 파리 카페에서 작품을 쓰고 예술 사조를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생제르맹데프레 지구의 카페 드 플로르와 레 두 마고는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카뮈를 중심으로 한 실존주의 운동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파리의 전설적 카페들
수많은 파리 카페 중에서도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몇 곳은 방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 카페 프로코프(Le Procope): 6구에 위치. 1686년 개업한 파리 최초의 카페. 지금도 프랑스 전통 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영업 중. 내부에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앉았던 테이블,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이 머물렀던 흔적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 생제르맹데프레 중심에 위치. 1887년 개업. 20세기 초 모더니즘 문학자들, 이어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모이던 곳. 지금도 문인과 지식인들이 자주 방문합니다.
- 레 두 마고(Les Deux Magots): 카페 드 플로르 근처. 19세기 말부터 운영. 헤밍웨이, 사르트르, 피카소, 조이스 같은 인물들의 단골이었습니다.
- 브라스리 리프(Brasserie Lipp): 생제르맹데프레 맞은편.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 르 돔(Le Dôme): 몽파르나스 지구. 1898년 개업. 모딜리아니, 샤갈, 피카소 등 예술가들의 카페.
- 라 쿠폴(La Coupole): 몽파르나스. 1927년 개업. 당시 예술가들의 대형 모임 장소. 내부 장식이 아르데코 스타일로 아름답습니다.
- 카페 드 라 페(Café de la Paix): 오페라 가르니에 옆. 1862년 개업. 19세기 파리 부르주아 사회의 중심이었던 곳.
- 르 콩슐라(Le Consulat): 몽마르트르의 붉은 벽의 작은 카페. 반 고흐, 세잔, 피카소가 자주 찾던 곳.
이 역사적 카페들은 현재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 57유로, 간단한 식사는 2030유로 정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특별한 역사적 분위기를 경험하려는 관광객들에게 여전히 인기입니다.
카페 메뉴와 주문법
프랑스 카페 메뉴는 한국과 상당히 다릅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주요 메뉴를 정리합니다.
- Café 또는 Expresso(카페, 엑스프레소): 그냥 카페라고 주문하면 작은 잔의 에스프레소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아메리카노와는 다른 진한 커피입니다.
- Café allongé(카페 알롱제): 물로 희석한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와 유사하지만 양이 여전히 적습니다.
- Café crème(카페 크렘):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넣은 것. 아침 식사 때 주로 마십니다.
- Café au lait(카페 오 레): 우유를 넣은 커피. 크렘보다 우유가 더 많이 들어갑니다. 아침에 볼에 마시는 것이 전통.
- Noisette(누아제트):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 한국의 마키아토와 비슷.
- Café décaféiné 또는 Déca(데카페이네, 데카): 디카페인 커피.
- Chocolat chaud(쇼콜라 쇼): 핫초코. 프랑스의 핫초코는 녹인 초콜릿처럼 진한 경우가 많습니다.
- Thé(테): 차. 품종이 다양합니다.
- Jus d'orange(쥐 도랑주): 오렌지 주스.
오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카페 메뉴도 있습니다.
- Croissant(크루아상): 그 유명한 크루아상. 카페와 함께 먹는 것이 전형적.
- Pain au chocolat(팽 오 쇼콜라): 초콜릿이 들어간 빵.
- Tartine(타르틴): 바게트에 버터와 잼을 바른 것. 프랑스식 아침의 기본.
- Formule petit-déjeuner(포르뮐 프티 데쥐네): 아침 세트. 커피, 주스, 빵 등이 포함됩니다.
점심과 저녁에는 다양한 식사 메뉴도 있습니다.
- Croque-monsieur(크로크 무슈): 햄과 치즈를 넣은 구운 샌드위치. 계란이 올라가면 크로크 마담(Croque-madame).
- Salade(살라드): 샐러드. 니수아즈 샐러드, 세자르 샐러드 등이 인기.
- Steak frites(스테이크 프리트):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가장 프랑스적인 간단 식사.
- Plat du jour(플라 뒤 주르): 오늘의 요리. 합리적 가격에 셰프가 추천하는 메뉴.
카페 테라스 vs 실내
프랑스 카페는 실내와 테라스(Terrasse)가 구분되어 있고, 가격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 테라스가 조금 더 비쌉니다. 또한 앉는 위치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바에 선 채로 마시는 것이 가장 저렴하고, 실내 착석, 테라스 착석 순으로 가격이 올라갑니다.
날씨 좋은 날 테라스에 앉는 것은 파리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카페의 테라스 의자는 모두 거리를 향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것이 파리 카페의 정석이기 때문입니다. 실내도 좋지만 날이 맑다면 테라스를 시도해보세요.
흡연자에게 알려줄 정보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실내 흡연이 금지되어 있어, 흡연자들이 테라스에 많이 모입니다. 비흡연자에게 테라스가 불편할 수 있으니 이 점을 고려하세요. 실내는 완전히 금연입니다.
카페 에티켓과 팁
파리 카페에서의 기본 에티켓을 알아둡시다.
- 직접 들어가 자리 잡기: 직원이 안내해 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자리를 잡습니다. 빈 테이블을 찾아 앉으세요.
- 메뉴 확인: 메뉴판은 테이블에 있거나 직원이 가져다 줍니다. 가격은 대부분 바(au bar), 살(en salle, 실내), 테라스(en terrasse)별로 따로 표시됩니다.
- 주문은 여유롭게: 직원이 바로 오지 않아도 재촉하지 않습니다. 5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정상입니다.
- 인사는 필수: Bonjour로 시작하고 Merci로 끝내는 것이 기본. 아침에는 Bonjour(봉쥬르), 저녁에는 Bonsoir(봉수아).
- 물은 유료일 수 있음: Une carafe d'eau, s'il vous plaît(한 주전자의 물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면 수돗물을 무료로 줍니다. 병물(eau en bouteille)을 시키면 유료입니다.
- 계산: 계산서를 원할 때는 L'addition, s'il vous plaît(계산서 부탁합니다). 카드 결제가 대부분 가능합니다.
- 팁: 의무는 아니지만 1
2유로 정도 테이블에 남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좋은 서비스였다면 510% 정도 주어도 좋습니다. 영수증에 서비스 포함(service compris)이라고 써 있으면 별도 팁은 필요 없습니다. - 오래 앉아 있기: 한 잔 시키고 몇 시간 있어도 괜찮습니다. 파리 카페의 문화입니다.
파리 카페에서의 하루
카페 문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루 일정에 여러 번 카페를 포함시켜 보세요.
- 아침(7~10시): 호텔 근처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카페 크렘으로 시작. 신문을 읽거나 하루 일정을 세우는 시간.
- 오전 간식(10시
11시): 관광 중 잠시 멈춰 에스프레소 한 잔. 1015분의 휴식으로 피로가 풀립니다. - 점심(12~14시): 카페에서 플라 뒤 주르나 샐러드로 간단히 식사.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더 파리답습니다.
- 오후 간식(15~17시): 오후에 지치면 카페에 들러 쇼콜라 쇼나 마카롱으로 에너지 충전.
- 아페리티프(18~20시): 저녁 전 카페에서 키르(Kir, 화이트 와인에 카시스 리큐어) 또는 와인 한 잔. 친구와 만나는 시간.
- 저녁(20시 이후): 브라스리에서 본격적인 식사. 스테이크 프리트, 홍합 요리 등.
이렇게 하루에 여러 번 카페에 들르는 것이 파리지앵의 일상입니다. 빡빡한 관광 일정보다 카페 문화를 중심으로 하루를 편성하면 훨씬 파리다운 경험이 됩니다.
파리 카페 문학 산책
문학적 감성이 있다면 파리 카페 문학 투어도 추천합니다.
- 헤밍웨이 투어: 그의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등장한 카페들. 클로저리 데 릴라(La Closerie des Lilas), 레 두 마고, 딩고 바, 카페 드 플로르 등.
-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투어: 카페 드 플로르가 그들의 작업실. 실존주의 철학이 탄생한 곳.
- 피츠제럴드 투어: 파리 곳곳의 바와 카페에서 집필. 리츠 호텔 바가 유명합니다.
- 조지 오웰 투어: 그의 파리와 런던의 빈털터리 생활 속 카페들.
최근 파리 카페의 변화
파리의 전통 카페는 최근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체인 카페(스타벅스, 프레타망제), 스페셜티 커피숍, 그리고 임대료 상승으로 일부 역사적 카페들이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독립 카페와 스페셜티 커피 하우스가 등장해 파리 커피 문화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11구, 10구 같은 지역에는 한국 카페 못지않은 트렌디한 카페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원두 로스팅을 직접 하고 라떼 아트를 선보이는 이 새 세대 카페들은 전통 카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카페 모두를 경험하는 것이 지금 파리 카페 여행의 묘미입니다.
프랑스어 카페 회화
- Bonjour, une table pour deux, s'il vous plaît(봉쥬르, 윈 타블 푸르 두, 실 부 플레): 안녕하세요, 두 명이요.
- Un café, s'il vous plaît(앵 카페, 실 부 플레): 커피 한 잔 주세요.
- Avec du lait, s'il vous plaît(아베크 뒤 레, 실 부 플레): 우유랑 함께요.
- Est-ce que je peux avoir la carte?(에스크 쥬 푀 아부아르 라 카르트): 메뉴 좀 볼 수 있을까요?
- Je voudrais un croissant(쥬 부드레 앵 크루아상): 크루아상 하나 주세요.
- L'addition, s'il vous plaît(라디시옹, 실 부 플레): 계산서 주세요.
- Merci, au revoir(메르시, 오 르부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매일11시 블로그는 프랑스 여행과 일상에 바로 쓸 수 있는 프랑스어 표현을 매일 3개의 표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드립니다. 파리 카페 문화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프랑스어 기초를 익혀두는 것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