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Leipzig) 토마스 교회(Thomaskirche). 토요일 오후 3시. 교회 안은 어둑했고, 천장이 높았고, 어딘가에서 오르간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내판에 "오늘 5시 모테트(Motette) 공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교회에서 1723년부터 1750년까지 27년 동안, 한 사람이 매주 일요일에 새로운 합창곡을 작곡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그가 만든 곡 수가 1000곡이 넘는다.
지금 이 교회에서 듣는 음악이 그 1000곡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게, 묘한 감각이었다.
바흐가 라이프치히로 온 이유
바흐가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칸토르(Kantor, 합창 지휘자) 자리를 받은 건 1723년이다. 그때 38세.
사실 바흐는 첫 번째 후보가 아니었다. 라이프치히 시의회는 처음에 텔레만(Telemann)을 원했다. 텔레만이 거절하자 그라우프너(Graupner)에게 갔다. 그라우프너도 못 오게 됐다. 결국 세 번째 후보가 바흐였다.
시의회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톤으로 결정문을 썼다. "최고의 후보는 못 구했으니 평범한 후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평범한 후보가 음악사를 바꿨다.
라이프치히 시의회의 그 결정문은 지금 라이프치히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문서다.
토마스 교회 합창단(Thomanerchor)
토마스 교회의 진짜 자랑은 800년 된 합창단 토마너코어(Thomanerchor)다.
1212년에 창단된 소년 합창단이다. 당시 토마스 학교의 학생들이 합창단원이었다. 80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바흐가 칸토르였던 시절에도 이 합창단이 그의 곡을 노래했다.
지금도 토마너코어는 같은 학교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9세부터 18세까지 약 90명. 같은 기숙사에서 살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아침에 토마스 교회에서 노래한다.
내가 토요일 5시에 들은 모테트가 바로 토마너코어 공연이었다. 입장료 2유로. 한국 어떤 클래식 콘서트보다 인상적이었다.
게반트하우스 — 또 하나의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는 바흐만의 도시가 아니다.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 오케스트라 중 하나가 여기 있다.
1743년 창단. 멘델스존이 1835년부터 11년간 지휘자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 라이프치히 초연도 멘델스존이 했다.
지금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라이프치히의 자부심이다. 시즌 동안 매주 공연이 있다. 표값이 의외로 합리적이다. 30~80유로 사이.
라이프치히에서 음악 일정을 짠다면 토마스 교회 모테트(토요일 오후, 일요일 오전)와 게반트하우스 콘서트를 둘 다 잡으면 좋다.
바흐 박물관과 멘델스존 하우스
음악 도시답게 박물관도 많다.
바흐 박물관(Bach-Museum) — 토마스 교회 바로 앞. 바흐의 생애와 라이프치히 시절을 다룬다. 그가 직접 쓴 악보 원본을 볼 수 있다.
멘델스존 하우스(Mendelssohn-Haus) — 멘델스존이 1845년부터 1847년까지 살았던 집. 작곡가가 죽은 곳이기도 하다. 그가 쓰던 책상, 그가 그린 수채화들이 그대로 있다.
슈만 하우스(Schumann-Haus) —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 후 처음 4년을 살았던 집. 슈만의 첫 교향곡이 여기서 작곡됐다.
이 세 박물관이 다 도보 30분 안에 있다. 라이프치히 도심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바흐가 받은 월급
바흐 박물관에서 본 게 인상적이었다. 바흐의 월급 명세서가 전시되어 있었다.
1730년대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칸토르 월급은 약 700탈러였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그렇게 많지 않다. 라이프치히 의사 월급 정도.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의사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게다가 매주 새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고, 합창단을 가르쳐야 했고, 교회 음악 행사를 다 운영해야 했다. 부업으로 결혼식, 장례식 음악을 작곡해서 부수입을 벌었다.
자녀가 20명이었다. (그중 10명은 어릴 때 사망. 18세기 사망률이 그랬다.) 살아남은 자녀들 중 4명이 작곡가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박물관에서 이 부분을 보면서 좀 짠했다. 위대한 음악이 그렇게 빠듯한 일상에서 나왔다는 게.)
라이프치히가 음악 도시가 된 이유
라이프치히가 왜 음악 도시가 됐을까. 결정적인 건 17세기부터 라이프치히가 인쇄 출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악보 출판이 활발했고, 음악 책이 라이프치히에서 나왔다. 음악 잡지 "음악 일반 신문(Allgemeine musikalische Zeitung)"이 1798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발행됐다. 음악 출판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Breitkopf & Härtel)이 17세기 중반에 설립됐고, 지금도 운영된다.
악보가 출판되면 음악가들이 모인다. 음악가들이 모이면 음악 학교가 생긴다. 1843년에 멘델스존이 라이프치히 음악원(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Leipzig)을 세웠다. 지금도 독일 최고 음악원 중 하나다.
이 모든 것이 800년 동안 천천히 쌓인 결과다. 라이프치히는 어쩌다 음악 도시가 된 게 아니라, 만들어진 도시다.
베를린에서 한 시간 거리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에서 ICE 고속열차로 1시간 10분이다.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1박 2일이 더 좋다.
토요일에 도착해서 5시 토마스 교회 모테트, 일요일 아침 9시 30분 미사. 두 번의 합창을 들으면 라이프치히가 어떤 도시인지 알게 된다. 그 사이에 바흐 박물관, 게반트하우스, 멘델스존 하우스. 짧은 도시이지만 음악으로 가득한 도시다.
다음에 독일에 간다면, 베를린만 보지 말고 라이프치히 1박을 추천하고 싶다. 토마스 교회에서 듣는 합창 한 번이 그 모든 일정의 가치를 넘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