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비어가르텐. 점심 시간이 살짝 지난 1시. 옆 테이블 어르신이 메뉴판을 보면서 한참 고민하다가 한마디 했다. "바이스부르스트는 이미 끝났네." 시계를 보니 1시 5분이었다.
알고 보니 뮌헨에는 "바이스부르스트는 정오의 종소리 전에 먹어야 한다(Die Weißwurst darf das Mittagsläuten nicht hören)"는 오래된 규칙이 있다. 12시 종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것.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한 사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뮌헨 사람들 거의 다 이 규칙을 따른다.
바이스부르스트가 뭔지
바이스부르스트(Weißwurst)는 뮌헨 전통 흰색 소시지다. 송아지 고기와 돼지 등살을 갈아서 양파, 파슬리, 레몬 껍질, 카르다몸 같은 향신료를 섞어 만든다. 색이 하얗다. 길이는 12cm 정도, 두께는 손가락 두 개.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 삶은 물에 담가서 그대로 나온다 — 굽지 않는다. 물에 그대로 담가둔 채로 나온다.
- 껍질은 안 먹는다 — 칼과 포크로 한쪽 끝을 자르고 속만 빼서 먹는다. 또는 손으로 잡고 껍질에서 짜내서 먹는다.
- 단 머스타드(süßer Senf)와 같이 먹는다 — 일반 머스타드 아니다. 바이에른 단 머스타드여야 한다.
- 소금 프레첼(Brezn)이 같이 나온다 — 큰 프레첼.
- 무알콜 맥주나 바이스비어를 마신다 — 보통 보통 바이스비어(밀맥주).
이 한 세트가 뮌헨식 아침 식사다. 점심도 아니고 아침이다.
왜 정오 전인가
이 규칙의 기원은 1857년이다. 뮌헨의 한 정육점 주인 제프 모저(Sepp Moser)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에는 냉장 기술이 없었다. 바이스부르스트는 송아지 고기로 만들어서 부패가 빨랐다. 신선하지 않으면 식중독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침에 만들면 점심까지만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생겼다.
19세기 정오는 점심 식사 시간이 아니었다. 뮌헨 노동자들에게 정오는 점심 종이 울리는 시간이지만, 진짜 점심은 더 일찍 먹었다. 바이스부르스트는 늦은 아침 식사(zweites Frühstück)였다.
19세기 뮌헨 노동자들은 새벽 6시에 일을 시작해서 9~10시쯤 바이스부르스트로 휴식을 취했다.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서 신선도 문제는 없다. 그런데 규칙은 그대로 살아있다. 전통이 됐다.
정말 12시 이후에는 못 먹나
엄밀히 말하면 못 먹는 건 아니다. 12시 이후에 바이스부르스트를 파는 식당도 있다. 관광객 식당은 거의 다 종일 판다.
그런데 뮌헨 현지인들은 12시 이후에는 거의 안 먹는다. "12시 이후 바이스부르스트는 진짜 바이스부르스트가 아니다"라는 정서가 있다.
전통 비어가르텐이나 비어할레에서는 12시까지만 메뉴에 있다. 보통 11시 30분이면 종업원이 "바이스부르스트는 곧 마감입니다" 하고 알려준다. 1시쯤 가면 메뉴판에서 빠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이 규칙이 좀 답답했는데, 지금은 이게 뮌헨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도시가 자기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게.)
어디서 먹어야 하는가
뮌헨에서 진짜 바이스부르스트를 파는 곳들.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äuhaus) — 가장 유명하지만 관광객 위주. 전통이긴 하다.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 Keller) — 뮌헨 사람들도 자주 가는 비어가르텐. 바이스부르스트가 정통이다.
바이세스 브로이하우스(Weisses Bräuhaus) — 1485년에 시작한 가장 오래된 브로이하우스 중 하나. 1989년 슈나이더 바이스(Schneider Weisse) 가문이 인수해서 운영. 바이스비어와 바이스부르스트의 클래식 조합이다.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 주변 작은 가게들 — 동네 정육점이나 작은 식당이 의외로 바이스부르스트가 좋다.
가격은 보통 한 쌍에 69유로. 프레첼과 맥주 한 잔까지 합치면 1520유로 정도. 비싸지 않다.
바이스부르스트 에티켓
뮌헨에서 바이스부르스트를 먹을 때 따라야 할 비공식 규칙들.
- 포크와 칼로 먹는다 (또는 짜내기 방식) — 그냥 입에 넣고 깨물어 먹으면 안 된다. 껍질이 질기다.
- 단 머스타드를 빵이 아니라 소시지에 직접 찍는다
- 맥주는 무알콜 또는 바이스비어 — 라거 맥주는 안 어울린다.
- 천천히 먹는다 — 바이스부르스트는 빨리 먹는 음식이 아니다. 11시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먹는다.
(짜내기 방식, 즉 "쭈첼른(zuzeln)"은 손으로 한쪽 끝을 잡고 입으로 살짝 빨아서 속을 빼는 방식이다. 익숙해지면 이게 더 쉽다고 한다. 처음 보면 좀 충격적이다.)
바이스부르스트 너머의 뮌헨
바이스부르스트 한 끼는 뮌헨 그 자체다. 천천히 먹는 음식, 정해진 시간, 전통과 규칙. 효율 중심의 베를린이나 화려한 함부르크와 다른 뮌헨의 정체가 이 한 쌍의 흰색 소시지에 들어 있다.
(뮌헨 사람들은 "베를린은 베를린이고, 뮌헨은 바이에른이지"라고 농담한다. 같은 독일이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뮌헨에 다시 간다면 첫째 날 아침 11시에 바이스부르스트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게 이 도시를 만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