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첫 아침을 맞은 날, 호텔 근처 베커라이(Bäckerei) 앞을 지나갔다. 6시 50분쯤이었는데 이미 줄이 5명 서 있었다. 다들 양복이나 작업복을 입은 출근길 사람들이었다.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 그 안에는 갓 구운 브뢰첸(Brötchen)이 들어 있었다.
그게 독일 아침의 시작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빵 한두 개를 매일 새로 사는 행위가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의식 같은 거였다.
독일은 빵의 나라다
독일에는 등록된 빵 종류가 3000가지가 넘는다. 유네스코가 2014년 독일 빵 문화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을 정도다. 한 나라에 그렇게 많은 빵이 필요한가 싶지만, 독일 사람들에게는 정상이다.
가장 기본적인 분류:
- 브로트(Brot) — 큰 식빵, 보통 호밀(Roggen) 비율이 높다
- 브뢰첸(Brötchen) — 작은 빵, 손바닥만한 크기, 아침에 먹는 것
- 가벨(Gabel) — 베를린 지역 표현, 다른 지역은 다른 이름
- 젬멜(Semmel) — 바이에른에서 브뢰첸을 부르는 이름
지역마다 같은 빵이 다른 이름이다. 베를린에서 "젬멜 주세요" 하면 못 알아듣는다. 뮌헨에서 "브뢰첸 주세요" 하면 약간 외지인 취급. 자기 지역 이름을 쓰는 게 디테일이다.
독일에서 빵은 음식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호밀 빵 없이는 독일이 아니다.
매일 사는 게 핵심이다
한국에서 빵은 보통 마트에서 사 온 봉지 식빵이다. 며칠 두고 먹는다. 독일은 다르다.
진짜 독일 빵은 보존료를 거의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굳는다. 갓 구웠을 때 가장 맛있고, 다음날이면 이미 다르다. 그래서 매일 가는 게 정상이다.
베커라이는 보통 새벽 56시에 문을 연다. 베이커들은 그 전 새벽 23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7시 전후로 들러서 그날 먹을 브뢰첸 24개를 사 간다. 점심 즈음에는 좋은 빵이 거의 다 팔리고, 오후에는 좀 시들해진다. 67시면 문을 닫는다.
이 리듬이 동네 단위로 100년 넘게 반복돼 왔다. 자동화도 있고 대형 베이커리 체인도 있지만, 동네 마이스터(Meister) 베이커가 운영하는 가게가 여전히 강하게 살아남아 있다.
호밀빵의 진심
한국 사람이 처음 독일 빵을 먹으면 약간 당황한다. 너무 묵직하고, 시고, 까만 빵이 많다. 이게 호밀빵(Roggenbrot)이다.
밀가루로 만든 빵에 익숙한 입맛에는 호밀빵이 거칠게 느껴진다. 그런데 며칠 먹다 보면 그 시큼한 풍미가 묘하게 중독된다. 사워도(Sauerteig) 발효로 만들어서 깊은 산미가 있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포만감도 길게 간다.
가장 강한 버전은 'Pumpernickel'(풍퍼니켈)이다.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빵으로, 16시간 이상 저온에서 굽는다. 한 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풍미다. (참고로 호밀빵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다. 독일 호밀과 물이 미세하게 다르다고 한다.)
베커라이에서 어떻게 주문하는가
처음 베커라이에 들어가면 메뉴판이 따로 없다. 진열대에 빵이 다 놓여 있고, 가격표가 붙어 있다.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Zwei Brötchen, bitte (브뢰첸 두 개 주세요)"라고 하면 된다.
기본 표현 몇 개만 알면 충분하다.
- 브뢰첸 두 개 주세요 — Zwei Brötchen, bitte
- 호밀빵 반 덩어리 — Ein halbes Roggenbrot
- 슬라이스 해주세요 — Geschnitten, bitte
- 가지고 갈게요 — Zum Mitnehmen
- 여기서 먹을게요 — Zum Hieressen
손님이 직접 빵을 봉투에 넣는 시스템이 아니다. 직원이 봉투에 담아준다.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빠르게 주문하고, 잔돈 받고, 나간다. 한 사람당 30초~1분.
일요일에도 빵은 산다
전반적으로 독일 일요일은 모든 게 닫혀 있는데, 베커라이는 예외다. 일요일 오전 8시~12시까지 영업하는 곳이 많다.
이건 독일 사람들이 빵 없이는 일요일 아침을 맞을 수 없다는 정서가 법으로 인정된 결과다. 다른 모든 슈퍼와 상점이 닫혀도, 빵집은 열린다. 일요일 아침의 갓 구운 브뢰첸은 거의 신성한 의식 같은 거다.
베를린, 뮌헨 같은 큰 도시에서는 기차역의 베커라이가 일요일 종일 영업하기도 한다. 일요일 빵에 대한 절박한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이 적응하는 법
독일 살러 가는 한국 사람들이 베커라이 문화에 적응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처음 한 달은 마트에서 봉지 빵을 산다. 익숙해서. 한 달쯤 지나면 누가 권해서 처음 베커라이를 가본다. 갓 구운 브뢰첸을 먹어본다. 그 다음부터는 마트 빵이 못 먹게 된다.
이게 거의 모든 한국인의 경로다. 한 번 진짜를 맛보면 돌아갈 수 없다. 그러고 나면 매일 아침 6시 50분에 베커라이 줄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한국에서도 가능한가
이 글을 쓰면서 좀 슬픈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에는 동네 단위의 진짜 베커라이가 별로 없다. 큰 도시의 일부 독일 빵집이 있긴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에 들르는" 그런 거리감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게 동네 빵집인데, 한국 빵집은 일반적으로 케이크나 단팥빵 같은 단 빵 중심이다. 매일 아침 식사용 호밀빵을 사는 문화는 자리잡지 않았다.
다음 독일에 가면 일주일 정도 베커라이 출근길 의식을 따라 해보길 권한다. 갓 구운 브뢰첸 하나, 버터, 가벼운 잼 — 그게 뭐가 그리 특별한가 싶지만, 직접 해보면 안다. 어떤 도시는 빵 위에 세워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