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어느 골목 쌀국수 집에서 메뉴를 봤는데 '분보후에(Bún bò Huế)'가 있었다. 퍼(Phở)만 알고 있었던 터라 뭔지 몰라서 시켰다. 나온 국물이 빨간색이었다. 맛을 보는데, 퍼보다 진하고 매콤하고 향신료 냄새가 훨씬 강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두 번째 숟가락에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 날 이후 베트남에 갈 때마다 분보후에부터 찾게 됐다.
분보후에가 뭔지
분보후에는 베트남 중부 후에(Huế)시에서 온 쌀국수다. '분(Bún)'은 쌀로 만든 둥근 면, '보(Bò)'는 소고기, '후에'는 지역 이름이다.
퍼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면: 퍼는 납작한 쌀국수인데, 분보후에는 더 굵고 둥근 면을 쓴다. 씹는 질감이 다르다.
국물: 레몬그라스, 새우 발효 소스(맘루옥, mắm ruốc), 고추기름이 들어간다. 이 세 가지 조합이 분보후에 특유의 향과 매운맛을 만든다. 퍼 국물보다 훨씬 복잡하고 강하다.
고명: 소고기 편육, 돼지 족발(자오헤오, giò heo), 때로는 순대(챠루아, chả lụa), 그리고 두부 튀김이 올라간다.
채소: 바나나 꽃을 얇게 썬 것, 숙주나물, 민트, 고수, 그리고 후에 스타일의 채소 반찬이 곁들여진다.
후에와 왕실 요리
분보후에가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은 후에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Nguyễn) 왕조(1802~1945)의 수도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후에 왕실 요리는 다양성과 섬세함으로 유명하다. 황제는 하루 50가지 이상의 요리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요리의 색깔, 플레이팅, 미적 요소를 중시했다.
이 왕실 요리 전통이 서민 음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분보후에도 단순한 거리 음식이지만, 향신료 조합과 고명의 다양함에서 그 영향이 느껴진다.
후에는 지금도 '베트남 요리의 수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분보후에, 반코아이(bánh khoái, 새우 팬케이크), 컴헨(cơm hến, 재첩 밥), 분팃느엉(Bún thịt nướng, 구운 돼지고기 쌀국수)... 후에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다.
분보후에 먹는 방법
처음 먹는 사람들이 자주 당황하는 게 테이블에 올라오는 채소 플레이트다. 바나나 꽃 채, 숙주, 허브들을 그냥 국수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 원하는 만큼 넣는다.
맘루옥(새우 발효 소스)을 추가로 달라는 경우도 있다. 진짜 후에식 맛을 원한다면 이걸 한 숟가락 더 넣으면 된다. (냄새가 강렬하니 각오해야 한다.)
레몬이나 라임을 짜 넣으면 맛이 밝아진다. 고추를 더 원한다면 고추 슬라이스나 소스를 추가한다.
분보후에는 자기 취향대로 조합하는 음식이다. 처음부터 완성품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서 완성된다.
후에에서 분보후에 먹기
후에에 간다면 분보후에는 아침 식사로 먹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사람들은 쌀국수를 아침에 먹는 문화가 있고, 특히 후에는 아침부터 영업하는 분보후에 집들이 골목에 있다.
유명한 곳들이 있지만, 솔직히 현지인이 아침부터 줄 서는 골목 가게가 더 맛있는 경우가 많다. 구글 지도에 'bún bò Huế' 검색하면 나오는 곳 중 별점 높고 리뷰 많은 곳보다, 별점 없는 작은 가게에서 더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가격도 호치민이나 하노이보다 저렴하다. 2025년 기준 한 그릇에 30,00050,000동(약 1,5002,500원) 정도.
분보후에 주문할 때 베트남어
- 「Cho tôi một tô bún bò Huế」— 분보후에 한 그릇 주세요
- 「Cay không?」— 매워요?
- 「Ít cay thôi」— 조금만 맵게 해주세요
- 「Thêm rau đi」— 채소 더 주세요
- 「Ngon lắm!」— 정말 맛있어요!
퍼가 베트남 음식의 대명사가 된 건 하노이와 사이공이 세계에 먼저 알려진 이유가 크다. 후에는 상대적으로 나중에 알려진 도시다. 하지만 음식 하나만 놓고 보면, 분보후에는 퍼 못지않은 깊이가 있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더 강렬하다. 알고 먹으면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