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처음 갔을 때 아침에 줄을 서서 베이글을 산 적이 있다. 오전 7시인데 10명 넘게 줄이 서 있었다. 카운터 뒤의 아저씨는 주문을 받고 자르고 크림치즈를 바르는 동작을 1초도 낭비하지 않았다. "Everything bagel with scallion cream cheese"라고 했더니 눈도 안 마주치고 15초 만에 봉투를 내밀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아, 이게 다른 거구나. 겉은 씹히는데 안은 쫄깃하고 묵직했다. 서울에서 먹은 베이글이랑 이름만 같은 음식이었다.
"뉴욕 물" 이야기는 사실인가
뉴욕 베이글이 특별한 이유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게 수질이다. 뉴욕시 수돗물은 캐츠킬 산맥에서 내려오는 연수(soft water)로, 미네랄 함량이 낮다. 베이글 반죽을 끓는 물에 데칠 때 이 수질이 글루텐 구조에 영향을 준다는 게 주된 주장이다.
실제로 몇몇 도시에서 "뉴욕 수질 재현 기계"를 써서 베이글을 만드는 집들이 생겼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진짜 뉴욕 베이글과는 여전히 다르다.
물은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나머지 조각들이 더 흥미롭다.
미국 제빵 협회 소속 연구자들은 수질보다 반죽 공법과 굽는 방식이 더 결정적이라고 본다. 뉴욕 전통 베이글 가게들은 밀가루 비율, 발효 시간, 끓이는 시간, 오븐 온도를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유지한다. 레시피가 아니라 몸에 밴 감각으로.
끓이는 과정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빵은 그냥 오븐에 굽는다. 베이글은 다르다. 반죽을 먼저 끓는 물에 1~2분 데친 다음 오븐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반죽 표면의 전분이 호화(gelatinization)된다. 이게 겉면의 광택과 씹는 질감을 만든다. 끓이는 시간이 짧으면 겉이 덜 단단하고, 길면 씹기 너무 힘들어진다.
뉴욕 전통 베이글 가게들은 보통 물에 꿀이나 맥아(malt)를 넣는다. 이게 미세하게 단맛과 갈색 색감을 더한다. (참고로 이 단계가 없으면 그냥 둥근 롤빵이다.)
현대적인 베이글 — 특히 슈퍼마켓 봉지에 들어있는 것들 — 은 이 과정을 생략하거나 증기 오븐으로 대체한다. 대량 생산에는 편하지만, 질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유대인 이민이 만든 음식
뉴욕 베이글의 역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동유럽 유대인 이민자들과 함께 시작된다. 폴란드, 러시아, 헝가리 출신 이민자들이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 몰려 살면서 빵집을 열었다.
베이글 자체는 폴란드 유대인 음식인 'bajgiel'에서 왔다. 유대인 빵집 노조(Bagel Bakers Local 338)가 1907년에 결성됐을 정도로, 베이글 만드는 일이 하나의 전문 직종이었다. 노조는 기술을 아무에게나 가르치지 않았다. 레시피와 기술이 엄격하게 통제됐다.
이 폐쇄성이 뉴욕 베이글의 균일한 품질을 유지했다. 1960년대 Murray Lender가 냉동 베이글을 개발해서 전국 유통을 시작하면서 베이글이 대중화됐지만, 뉴욕 베이글 가게들은 여전히 자기들 방식을 고수했다.
에브리씽 베이글의 탄생
지금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이글 종류는 단연 에브리씽(Everything) 베이글이다. 참깨, 양귀비씨, 마늘 플레이크, 양파 플레이크, 굵은 소금을 섞어서 위에 뿌린 것.
이 조합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에 대한 주장이 여럿 있다. 퀸즈에서 1980년대에 처음 만들었다는 설, 낙엽 떨어진 것처럼 여러 토핑 찌꺼기를 모았다는 도시 전설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에브리씽 베이글 시즈닝이 따로 제품으로 팔린다. 계란 요리, 아보카도 토스트, 심지어 라면에도 뿌려 먹는다. 베이글에서 출발한 토핑이 독립된 재료가 된 것이다. 뭔가 묘하게 뉴욕스럽다.
크림치즈와 훈제연어 조합
뉴욕 베이글 문화에서 크림치즈는 사실 기본이고, 진짜 클래식은 '록스(lox)'라고 부르는 훈제연어와의 조합이다. 여기에 캐이퍼, 얇게 썬 적양파, 토마토를 얹으면 "Lox and Schmear"가 된다.
슈미어(schmear)는 크림치즈를 뭉텅 바른다는 이디시어다. 이디시어가 뉴욕 식문화에 남아있는 흔적 중 하나다. 아직도 많은 베이글 가게에서 "schmear"라고 말하면 통한다.
이 음식이 왜 뉴욕 정체성의 일부가 됐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이민자들이 새 땅에서 고향 음식을 재구성한 결과다. 반죽, 물, 물고기, 치즈 — 전부 따로 보면 별것 아닌데, 합쳐지면 뉴욕이 된다.
솔직히 뉴욕 베이글이 "진짜 최고"인지는 모르겠다. 몬트리올 베이글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냥 각자 다른 거다. 다만 뉴욕 베이글에는 그 도시를 만든 이민의 역사가 들어있다는 건 확실하다. 음식이 꼭 맛으로만 기억되는 건 아니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