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친구 집에 일주일 머물 때, 첫날 아침 친구가 진지하게 부엌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우리 동네 쓰레기 규칙이야. 한 번 봐줘."
벽에 A4 크기 표가 붙어 있었다. 가로축은 요일, 세로축은 쓰레기 종류. 월요일 — 타는 쓰레기, 화요일 — 페트병만, 수요일 — 안 타는 쓰레기, 목요일 — 캔과 유리병, 금요일 — 종이류, 토요일 — 의류와 리사이클...
일본에서 살려면 이 표를 외워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동네마다 규칙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 쓰레기 분리 규칙의 가장 헷갈리는 점은 자치체(시정촌)마다 규정이 다르다는 거다. 도쿄 23구 안에서도 구별로 다르고, 도쿄와 가나가와는 또 완전히 다르다.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곳이 도쿠시마현 가미카쓰(上勝)초다. 인구 15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인데, 쓰레기를 45종류로 분리한다. 종이만 해도 신문, 잡지, 골판지, 우유팩, 사무 종이, 영수증으로 따로 나눈다. 페트병은 본체와 뚜껑과 라벨을 분리해야 한다.
이 마을은 2003년에 "쓰레기 제로 선언"을 한 곳이고, 80% 이상 재활용을 달성한다. 일본 안에서도 특수한 사례지만, 일본 분리수거 문화의 극단을 보여준다.
도쿄 시내 평균은 보통 5~10종류 정도 분리한다. 그래도 한국에서 이사 온 사람한테는 처음에 충격이다.
타는 쓰레기와 안 타는 쓰레기
가장 기본적인 구분이 "燃えるゴミ(모에루 고미, 타는 쓰레기)"와 "燃えないゴミ(모에나이 고미, 안 타는 쓰레기)"다.
타는 쓰레기: 음식물, 종이, 작은 플라스틱, 나무, 천 등.
안 타는 쓰레기: 금속, 유리, 도자기, 가전 부품, 큰 플라스틱.
문제는 이 구분이 직관적이지 않다는 거다. 라면 컵은 타는 쓰레기인가 안 타는 쓰레기인가? 동네마다 다르다. 도쿄 신주쿠구는 플라스틱 라면 컵을 타는 쓰레기로 분류하지만, 같은 도쿄 안의 어떤 구는 "용기포장 플라스틱"으로 따로 분리한다.
음식물 묻은 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깨끗이 씻으면 재활용, 못 씻으면 타는 쓰레기. 그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결국 본인 판단이다.
일본 분리수거의 진짜 어려움은 종류가 많아서가 아니라, 회색 지대가 많아서다.
페트병 처리의 극단적 디테일
페트병 하나 버리는 데 단계가 있다.
- 안에 든 음료 다 마신다.
- 물로 씻는다.
- 라벨을 떼낸다 (라벨은 "용기포장 플라스틱" 카테고리).
- 뚜껑을 분리한다 (뚜껑도 따로).
- 페트병 본체를 발로 밟아 납작하게 만든다.
- 페트병 전용 봉투에 넣는다.
이걸 매일 한다. 라벨이 잘 안 떨어지는 페트병이 있어서 가위로 잘라야 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싶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거의 자동으로 한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배우니까.
캔도 비슷하다. 알루미늄 캔과 스틸 캔을 분리하는 동네도 있다. 캔 옆면에 자석을 대보면 알 수 있다 — 붙으면 스틸, 안 붙으면 알루미늄.
지정 쓰레기봉투의 강제력
대부분 자치체에서 일반 쓰레기봉투를 그냥 쓰면 안 된다. 자치체에서 지정한 유료 쓰레기봉투를 사야 한다.
도쿄도 시정촌별로 다른데, 예를 들어 무사시노시는 30리터짜리 봉투 10장에 약 800엔이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산다.
이 봉투가 색깔별로 다르다. 빨간색 — 타는 쓰레기, 파란색 — 안 타는 쓰레기, 노란색 — 자원물 등. 색이 잘못된 봉투에 잘못된 쓰레기를 담으면 수거 안 한다. 봉투에 그대로 두고 가버리고, 빨간 스티커가 붙는다. "다음번에 제대로 분리해서 다시 버리세요"라는 메시지다.
이 빨간 스티커를 받는 게 동네에서 작은 망신이다. 옆집 아주머니가 봤을 거라는 사회적 압력이 작동한다.
쓰레기 버리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쓰레기 종류마다 수거 요일이 다르고, 그 요일 아침 8시 이전에 지정 장소에 내놔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전날 밤에 미리 내놓으면? 까마귀가 봉투를 찢는다. 일본 도시 까마귀는 학습 능력이 좋아서, 음식물 든 쓰레기 봉투를 정확히 찾아낸다. 그래서 도쿄에는 까마귀 막는 노란색 그물이 곳곳에 깔려 있다.
전날 밤에 내놓으면 동네에서도 눈치 받는다. 까마귀가 찢어 음식물이 길에 흩어지면 그 아침 청소를 누군가가 해야 하니까. 동네 평판이 떨어진다.
너무 일찍 일어나서 쓰레기 버리는 게 어려우면, 출근길에 들고 가서 회사 근처 쓰레기 수거함에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실은 규정 위반이지만, 묵인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부분
일본 외국인 거주자 커뮤니티에서 단연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이 쓰레기 규정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옆집에서 쓰레기 분리 잘못했다고 메모를 받았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와서 분리수거 개념이 약한 사람들한테는 충격적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그냥 한 봉투에 다 넣어서 버리는 게 일상인데, 일본에서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자치체별로 외국인용 쓰레기 분리 안내문을 영어, 중국어, 한국어, 베트남어로 만들어 배포한다. 그만큼 외국인이 헷갈리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이유
솔직히 일본의 분리수거가 너무 까다롭다는 비판도 있다. "왜 시민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쓰레기 분리에 써야 하나"라는 의견도 있고.
그래도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건 결과 때문이다. 일본 재활용율은 OECD 상위권이고, 도쿄 같은 인구밀집 지역에서도 길거리가 깨끗하다. 쓰레기 처리 인프라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개인적으로는 일주일 넘게 일본에서 살아보고 적응되니까 의외로 괜찮았다. 처음 며칠은 고통스럽지만, 한 달 지나면 거의 자동이 된다. 페트병 라벨 떼는 게 명상처럼 느껴진다고 한 친구도 있었다.
일본에 단기 여행이라면 호텔에서 쓰레기 신경 안 써도 된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살게 된다면, 동네 자치체 쓰레기 분리표를 부엌 벽에 붙이는 게 첫 번째 일이 될 거다. 그리고 그게 일본 일상에 적응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