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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카타콤: 600만 구의 유골이 잠든 지하 묘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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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카타콤: 600만 구의 유골이 잠든 지하 묘지의 역사

파리 지하 14미터에 펼쳐진 카타콤의 역사, 형성 과정, 관람 방법과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6-04-18·11분 읽기

파리 카타콤이란 무엇인가

파리 카타콤(Catacombes de Paris)은 파리 지하 약 20미터 깊이에 위치한 지하 납골당으로, 약 600만 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공식 명칭은 "파리 시립 납골당(l'Ossuaire Municipal de Paris)"이며, 총 길이 약 2킬로미터의 관람 구간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파리 지하에는 관람 구간 외에도 약 300킬로미터에 달하는 미공개 터널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이 터널들은 원래 중세 시대부터 파리의 건축 자재(석회암)를 채굴한 채석장(carrière)이었으며, 18세기 후반에 도시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납골당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벽면을 따라 정교하게 배치된 두개골과 대퇴골의 행렬은 섬뜩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을 지니며, 매년 약 50만 명의 방문객이 이 특이한 장소를 찾습니다.

카타콤의 탄생: 18세기 위생 위기

파리 카타콤의 역사는 18세기 후반 파리가 직면한 심각한 위생 위기에서 시작됩니다. 중세 이후 파리의 묘지들은 수백 년간 시신을 매장해 왔는데, 도시 인구가 급증하면서 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레 알(Les Halles) 시장 인근의 상이노상(Cimetière des Saints-Innocents) 묘지는 가장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약 600년간 사용된 이 묘지에는 200만 구 이상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었으며, 과도한 매장으로 인해 지면이 주변보다 약 2미터나 높아졌습니다. 1780년, 인근 건물의 지하실 벽이 무너지면서 부패한 시신과 뼈가 쏟아져 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루이 16세의 정부는 1786년 파리 시내의 모든 묘지를 폐쇄하고, 유골을 당시 사용이 중단된 석회암 채석장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 작업은 주로 야간에 종교 행렬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1786년부터 1859년까지 약 73년에 걸쳐 완료되었습니다.

지하 채석장의 역사

카타콤이 자리한 파리의 지하 채석장은 그 자체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의 루테티아(Lutèce, 파리의 옛 이름)부터 건축용 석회암이 채굴되기 시작했으며, 중세 시대에 파리가 급성장하면서 채석 작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1163~1345), 루브르 궁전, 파리의 수많은 건물들이 이 지하 채석장에서 나온 석회암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수 세기에 걸친 채석으로 파리 남부 지하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터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17세기에 들어 무분별한 채석으로 인한 지반 침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1774년에는 뤼 당페르(Rue d'Enfer) 근처에서 대규모 함몰 사고가 발생하여 수십 채의 건물이 지하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777년 "일반 채석장 감독국(Inspection Générale des Carrières, IGC)"이 설립되어 지하 터널의 안전 관리를 시작했으며, IGC는 오늘날까지 파리 지하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골의 예술적 배치

카타콤의 유골은 무작위로 쌓인 것이 아니라 정교한 패턴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작업을 지휘한 인물은 에리카르 드 투리(Louis-Étienne Héricart de Thury, 1776~1854)로, 1810년부터 1812년까지 채석장 감독관으로 재임하면서 카타콤을 공공 방문이 가능한 장소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는 두개골과 대퇴골을 교차로 배치하여 벽면을 구성하고, 나머지 뼈들을 그 뒤에 쌓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일부 구간에서는 두개골로 하트 모양이나 십자 모양을 만들기도 했으며, 벽면에는 죽음과 덧없음에 관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습니다. 입구에는 유명한 경고문 "여기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Arrête! C'est ici l'empire de la Mort)"가 새겨져 있어,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문구를 연상시킵니다. 유골의 출처(어느 묘지에서 이전된 것인지)를 표시하는 석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방문자는 각 구간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카타콤의 역사적 사건들

파리 카타콤은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1789~1799) 기간 왕당파와 혁명파 모두 카타콤을 은신처로 사용했습니다. 1871년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 시기에는 코뮌 지지자들이 카타콤에 숨어 정부군에 저항했으며, 왕당파 군인들이 카타콤에서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 점령군과 프랑스 레지스탕스(Résistance) 모두 카타콤을 활용했습니다. 독일군은 지하 벙커로, 레지스탕스는 비밀 회의 장소와 통신 거점으로 사용했습니다. 자유 프랑스군(Forces Françaises Libres)의 파리 지하 사령부가 카타콤 네트워크 안에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44년 파리 해방 직전,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카타콤의 터널을 통해 독일군 후방으로 침투하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카타필: 비밀 지하 세계의 탐험가들

파리의 지하 터널 네트워크에는 공식 관람 구간 외에도 광대한 미공개 구역이 있으며, 이곳을 탐험하는 사람들을 "카타필(cataphile)"이라 부릅니다. 카타필 문화는 1970~80년대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파리의 독특한 지하 하위문화입니다. 카타필들은 비밀 입구(종종 맨홀이나 건물 지하실)를 통해 지하에 진입하여 터널을 탐험하고, 벽에 그래피티를 그리고, 심지어 지하에서 파티와 영화 상영회를 열기도 합니다.

2004년에는 경찰이 카타콤 내부에서 완전히 갖추어진 비밀 영화관을 발견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좌석, 스크린, 프로젝터, 심지어 전화 회선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나,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공식 카타콤 탐험은 불법이며(벌금 60유로), 길을 잃으면 구조가 극히 어렵고 산소 부족, 감전, 함몰 등의 위험이 있습니다.

카타콤 관람 가이드

파리 카타콤은 파리 14구(14e arrondissement)의 당페르-로슈로 광장(Place Denfert-Rochereau)에 위치합니다. 메트로 4번선·6번선 당페르-로슈로(Denfert-Rochereau)역에서 도보 1분입니다. 관람 구간은 약 1.5킬로미터이며, 관람 시간은 약 45분~1시간입니다.

입장료는 일반 29유로, 오디오 가이드 포함 시 35유로입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이 필수이며, 공식 웹사이트(catacombes.paris.fr)에서 시간대를 지정하여 예약합니다. 성수기에는 1~2주 전에 매진되므로 미리 예약하세요.

내부는 연중 14도로 서늘하므로 여름에도 긴 소매 옷을 챙기세요. 130개의 좁은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야 하므로, 폐소공포증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카타콤 관람 후 근처의 뤼 다게르(Rue Daguerre) 시장 거리에서 크레프, 치즈, 와인 등을 즐기며 지상의 파리를 만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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