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Essen) 외곽에 있는 졸페라인 탄광(Zeche Zollverein)에 들어갔을 때, 처음엔 잘못 온 줄 알았다. 거대한 공업 기계들이 그대로 서 있는데, 그 사이에 사람들이 미술 작품을 보고 있었다. 탄광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는 커플도 있었다.
이게 루르 지역이 선택한 미래다.
루르가 어떤 곳인지
루르(Ruhr) 지역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 밀집 지역이다. 에센, 도르트문트, 보훔, 뒤스부르크, 겔젠키르헨 등 여러 도시가 연달아 붙어있다. 합산 인구가 500만 명이 넘어, 독일에서 가장 큰 대도시권 중 하나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루르는 유럽 산업혁명의 심장이었다. 독일 석탄의 절반 이상, 철강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왔다. 크루프(Krupp)와 티센(Thyssen) 같은 거대 철강·군수 기업이 여기서 성장했다.
1차 대전, 2차 대전 모두 루르의 공장들이 군수 물자를 대었다. 그래서 연합군 공습의 주요 표적이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석탄과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루르는 위기를 맞았다. 실업률이 치솟고, 인구가 빠져나갔다.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다음이 흥미롭다.
졸페라인: 탄광이 문화 유산이 되다
에센 졸페라인 탄광은 1847년에 채굴을 시작해 1986년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석탄 탄광 중 하나였다.
1989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가 이 탄광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기계, 건물, 시설 전체를 그대로 두고 문화 공간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였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금 졸페라인에는:
- 루르 박물관(Ruhr Museum): 루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박물관
- 레드 닷 디자인 박물관(Red Dot Design Museum): 세계적인 디자인 상인 레드 닷 어워드를 주관하는 기관의 박물관
- 각종 갤러리, 공연장, 아티스트 레지던시
- 겨울에는 스케이팅 링크
철제 기계들이 그대로 전시품이 됐고, 산업 시설 자체가 예술 공간이 됐다. 독일적인 발상이다.
루르 트리엔날레
루르 지역의 문화 전략에서 가장 야심찬 것 중 하나가 루르 트리엔날레(Ruhrtriennale)다.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규모 예술 축제인데, 공연 장소가 특이하다. 폐공장, 가스 탱크, 탄광 건물, 보일러 실.
이 공간들이 오페라, 현대 무용, 음악 공연의 무대가 된다. 기존 극장이나 홀에서 할 수 없는 종류의 퍼포먼스가 가능해진다. 규모도 다르고, 에너지도 다르다.
예술가들이 이 공간에서 얻는 영감은 일반 극장과 다르다고 한다. 100년 된 산업 시설의 냄새, 소리, 크기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된다.
루르의 전환은 과거를 지우는 게 아니라, 과거의 형태를 새로운 기능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게 독일적인 방식이다.
피닉스 시(Phoenix See): 제철소가 호수가 되다
도르트문트에는 피닉스 제(Phoenix See)라는 인공 호수가 있다. 원래는 피닉스(Phönix) 제철소 자리였다. 2006년 제철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물을 채워 호수를 만들었다. 2011년 개장했다.
지금 호수 주변에는 요트 클럽, 카페, 레스토랑, 주거 단지가 생겼다. 주말에 가족들이 산책하고 아이들이 노는 곳이다. 불과 20년 전에는 용광로가 있던 자리다.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올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루르 지역 여행할 때 독일어
- 「Wie komme ich zum Zeche Zollverein?」— 졸페라인 탄광까지 어떻게 가나요?
- 「Wann öffnet das Ruhr Museum?」— 루르 박물관 몇 시에 열어요?
- 「Gibt es eine Führung auf Englisch?」— 영어 가이드 투어 있나요?
- 「Wie lange dauert die Tour?」— 투어는 얼마나 걸리나요?
- 「Was war hier früher?」— 여기가 예전에 무엇이었나요?
마지막 질문이 루르 여행의 핵심이다. "여기가 예전에 무엇이었나요?" 대답을 들으면 지금 보이는 것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게 산업 유산 여행의 묘미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아래 묻혀있는 시간을 읽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