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구시가지(Phố cổ) 작은 카페. 좁은 골목 안쪽에 숨어 있는 가게였다. 메뉴판에 "Cà phê trứng" — 에그 커피. 5만 동(약 2700원).
작은 잔에 나온 음료를 봤더니, 위에 노랗고 진한 거품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마치 티라미수의 마스카르포네 거품 같은 모양. 한 입 먹어봤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살짝 달걀 향이 났다. 그 아래 진한 베트남 커피.
처음에는 "베트남에서 이런 디저트를?"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 음료는 1946년부터 있었다.
우유가 없던 시기의 발명품
에그 커피의 정확한 기원은 1946년 하노이다. 카페 지앙(Cafe Giảng)의 주인 응우옌 반 지앙(Nguyễn Văn Giảng)이 처음 만들었다.
당시 베트남은 아직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리고 우유가 귀했다. 신선한 우유는 거의 구할 수 없었고, 연유(condensed milk)도 비쌌다. 카페오레를 만들고 싶어도 우유가 없었다.
지앙은 메트로폴 호텔(Hotel Metropole)에서 바리스타로 일했다. 거기서 카푸치노를 배웠다.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우유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떠올린 대안이 달걀이었다. 달걀 노른자를 설탕과 같이 휘저으면 두툼한 거품이 만들어진다. 그 거품을 진한 베트남 커피 위에 올렸다. 카푸치노 비슷한 음료가 만들어졌다.
1946년 하노이의 한 바리스타가 만든 우유 대안. 그게 에그 커피의 시작이다.
카페 지앙은 아직 있다
흥미로운 건 지앙이 만든 카페 지앙이 지금도 운영된다는 거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 응우옌 후우 후안 거리(39 Nguyễn Hữu Huân).
가게 입구가 평범하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안쪽에 작은 테이블 10개 정도. 분위기가 1950년대 그대로다.
여기서 파는 에그 커피가 진짜 원조다. 가격도 4만 동 정도. 합리적이다. (관광객용 카페가 아니라 동네 카페 가격.)
지앙의 손자가 지금 운영한다. 가족이 3대째 같은 레시피로 만들고 있다. 정확한 레시피는 비밀이지만, 노른자 비율과 휘젓는 시간이 핵심이라고 한다.
어떻게 만드는가
에그 커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노하우가 있다.
- 달걀 노른자 1개, 콘덴스드 밀크 1~2 큰술, 설탕을 작은 그릇에 넣는다
- 거품기로 5~10분간 휘저어 두툼한 거품을 만든다
- 색이 노랗고 부드럽게 변할 때까지
- 작은 잔에 진한 베트남 커피(보통 핀 드립 커피)를 절반 정도 채운다
- 위에 휘저은 달걀 거품을 두텁게 올린다
핵심은 두 가지다. 달걀이 비린내가 안 나야 하고, 거품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좋은 에그 커피는 한 시간 후에도 거품이 유지된다. 만든 직후의 모양과 거의 같다. 이게 신선함과 휘젓기 기술의 차이다.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
에그 커피는 두 가지로 나온다.
따뜻한 에그 커피(Cà phê trứng nóng) — 정통 버전. 작은 잔이 뜨거운 물 그릇에 담겨 나온다. 천천히 마셔도 식지 않게.
차가운 에그 커피(Cà phê trứng đá) — 얼음을 넣은 버전. 여름에 좋다. 디저트 같은 느낌이 더 강해진다.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따뜻한 게 정통적이라서 추천한다. 단, 베트남 더운 날씨에는 차가운 것도 매력 있다.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게 더 좋다. 거품이 시간이 갈수록 커피와 섞이면서 맛이 변하는 게 재미있다. 한 잔에 두 번의 맛을 즐기는 셈.)
다른 변형도 많다
에그 커피가 인기를 끌면서 변형들이 나왔다.
에그 코코아(Cà phê cacao trứng) — 커피 대신 핫 코코아 베이스. 어린이도 마실 수 있다. 에그 마차(Trà xanh trứng) — 녹차와 달걀 거품. 단맛이 덜하고 깔끔하다. 에그 럼(Cà phê trứng rum) — 럼 한 방울이 들어간 버전. 어른용.
이런 변형들이 있는 카페들이 하노이 구시가지에 모여 있다. 카페 지앙이 정통이지만, 카페 푸 끄(Cafe Phố Cổ), 카페 딘(Cafe Đinh) 같은 곳도 유명하다. 카페 딘은 호안끼엠 호수가 보이는 위치라서 풍경도 좋다.
사이공에서는 다르다
베트남이라고 다 같은 커피 문화는 아니다. 사이공(호치민)에서는 에그 커피를 잘 안 마신다.
사이공 카페에서 에그 커피 메뉴를 발견하기 어렵다. 있어도 관광객용. 사이공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이스 밀크 커피(cà phê sữa đá), 아이스 블랙 커피(cà phê đen đá) 같은 차가운 커피다.
이유가 두 가지. 첫째, 에그 커피는 하노이 발명품이라 사이공에서는 정서가 다르다. 둘째, 사이공은 더워서 차가운 음료를 선호한다.
베트남 남북의 음식 문화 차이가 커피에서도 드러난다. 같은 베트남이지만 하노이 가서야 진짜 에그 커피를 먹을 수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집에서도 에그 커피를 만들어봤다. 노른자, 설탕, 콘덴스드 밀크, 베트남 핀 커피. 휘저어서 거품 올려서.
비슷하긴 한데 달랐다. 카페 지앙에서 마신 그 맛이 안 났다. 베트남 커피의 진한 맛, 좁은 골목 안 카페 분위기, 1940년대 그대로의 가게 인테리어. 그 모든 게 에그 커피 한 잔의 절반 이상이었다.
다음에 하노이 가게 되면 카페 지앙에서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에그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셔보고 싶다. 거품이 천천히 무너지면서 변하는 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보는 거. 그게 이 음료가 만들어진 1946년의 시간을 잠깐 만나는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