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이세탄 지하에 처음 내려갔을 때,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라 그냥 입구 근처에서 20분쯤 서 있었다. 과장 없이. 딸기 한 알에 2,000엔 하는 곳, 케이크 한 조각이 예술 작품처럼 포장된 곳, 그리고 직원이 흰 장갑을 끼고 초밥을 담아주는 곳.
이게 데파치카(デパ地下)다.
데파치카가 뭔지
데파치카는 데파토(デパート, 백화점)와 지카(地下, 지하)를 합친 말이다. 백화점 지하 식품관을 가리키는 일본 특유의 표현이다.
물론 한국 백화점 지하도 식품관이 있다. 하지만 일본 데파치카는 규모, 품질, 큐레이션 수준에서 차원이 다르다. 이세탄 신주쿠점 지하는 층 하나 전체가 식품관이고, 거기서 파는 것들이 일본 전역의 유명 식품 브랜드부터 파리 마카롱 가게까지 다 모여있다.
단순한 슈퍼마켓이 아니다. 큐레이션된 음식 박람회에 가깝다.
데파치카의 역사
일본 백화점 지하 식품관의 역사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쓰코시 백화점이 도쿄 니혼바시 본점 지하에 식품 매장을 연 것이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데파치카는 크게 발전했다. 일본 중산층이 확대되고, 사람들이 선물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오미야게, お土産, 선물 문화)와 맞물리면서 고급 식품을 한 곳에서 살 수 있는 데파치카가 핵심 공간이 됐다.
지금도 오미야게 문화는 살아있다. 여행 가면 그 지역 특산 과자를 사와야 하고, 데파치카에는 그런 선물용 식품 코너가 따로 있다. 포장이 예쁜 것도 이 때문이다.
데파치카에서 파는 것들
처음 보면 압도되는 이유는 카테고리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도시락과 반찬: 데파치카 도시락은 슈퍼마켓 도시락과 완전히 다르다. 에키벤(駅弁, 기차역 도시락)의 명품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찬합에 담긴 고급 규동, 연어 절임, 제철 야채 반찬. 가격은 1,500엔에서 5,000엔 사이가 많다. 점심 시간에 직장인들이 줄 서는 이유가 있다.
화과자와 양과자: 일본 전통 과자인 화과자(和菓子)와 서양식 케이크, 초콜릿이 나란히 있다. 다카시마야나 이세탄 데파치카에는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같은 파리 브랜드 팝업도 있다.
해산물: 신선한 회와 스시. 손으로 쥔 초밥을 유리 케이스 안에 진열해두고 직원이 포장해준다. 집에서 파티를 열 때 여기서 사면 된다.
치즈, 와인, 수입 식품: 고급 백화점 데파치카에는 유럽 치즈 전문 코너가 있다. 파르미지아노, 콩테, 만체고. 와인 코너도 제대로 된 곳들이 있다.
데파치카는 먹거리의 미술관이다. 사지 않아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데파치카의 저녁 풍경
이걸 모르면 손해다. 데파치카는 폐점 12시간 전에 할인을 시작한다. 보통 저녁 67시쯤부터 도시락, 케이크, 초밥에 20~50% 할인 스티커가 붙기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 데파치카에 가면 할인 스티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다. 노련한 일본 주부들의 시선이 예리하다. (이건 진짜다.) 직원이 스티커를 붙이러 가는 방향을 미리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절약 측면에서, 데파치카 할인 시간대는 꽤 훌륭한 선택이다.
데파치카에서 쓸 수 있는 일본어
데파치카 직원들은 대부분 높임말을 쓴다. 손님도 기본 표현 몇 가지를 알면 훨씬 편하다.
- 「これをください」— 이거 주세요
- 「試食できますか」— 시식할 수 있나요?
- 「これ、贈り物用に包んでもらえますか」— 이거 선물용으로 포장해주실 수 있나요?
- 「保冷剤を入れてもらえますか」— 아이스팩 넣어주실 수 있나요?
- 「割引はいつからですか」— 할인은 몇 시부터인가요?
마지막 질문은 솔직히 직원한테 물어보기 민망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의외로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데파치카는 일본이 음식을 대하는 방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이다. 품질에 대한 고집, 포장에 대한 세심함, 제철에 대한 존중. 관광지 안 가도 되는 날 오후, 백화점 지하에서 두 시간을 보내는 게 때로는 더 진짜 일본을 만나는 방법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