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반에 목탁 소리가 났다. 문 밖에서. 일어나야 하는 신호였다. 어젯밤 10시에 잠들었는데,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와카야마현 고야산(高野山) 슈쿠보 첫날 아침이었다.
솔직히 고야산에 가기 전에 '절에서 자는 거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슈쿠보가 뭔지
슈쿠보(宿坊)는 원래 사원을 방문하는 승려나 참배객들이 머무는 숙소였다. 지금은 일반인도 묵을 수 있도록 개방한 사찰 내 숙박 시설을 뜻한다.
일본 전국에 슈쿠보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와카야마현 고야산이다. 고야산은 9세기 고보다이시(弘法大師, 구카이)가 창설한 진언종의 성지로, 해발 약 900미터 산 위에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지금도 약 120개 사원이 있으며 그중 50여 개가 슈쿠보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토, 나라에서 못 느끼는 종류의 고요함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고야산이 산 위에 고립된 마을이라 밤에 번화가가 없다는 점이다.
슈쿠보의 하루 스케줄
슈쿠보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틀은 비슷하다.
체크인은 보통 오후 3~5시. 방은 다다미방이고, 이불을 깔고 자는 방식이다. 욕실이 공동인 곳도 있고 방에 딸린 곳도 있다.
저녁 식사는 '쇼진 요리(精進料理)'다. 불교 채식 요리로, 고기, 생선, 오신채(마늘, 파 등 냄새 강한 채소)가 없다. 처음엔 심심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먹어보면 꽤 정교하다. 두부, 참깨 두부(고마도후), 나물, 절임, 미소 된장국, 밥. 적은 것 같아도 배가 부른다.
저녁 9~10시면 소등이다. 핸드폰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분위기상 자게 된다. 이게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새벽 6시 전후로 아침 예불(おつとめ)에 참가할 수 있다. 의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슈쿠보에서 권장한다. 승려들이 독경을 하는 동안 옆에 앉아 있는 거다. 내용을 이해 못 해도 그 소리와 향 연기 안에 있으면 뭔가가 달라진다.
아침 식사도 쇼진 요리다. 저녁보다 간단하지만 충분하다.
고야산에서 꼭 해야 할 것: 오쿠노인 새벽 산책
고야산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오쿠노인(奥之院)이다. 2킬로미터 길이의 삼나무 숲 사이로 약 20만 기의 묘비와 탑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고보다이시가 명상 중이라 믿어지는 묘소가 끝에 있다.
낮에 가도 인상적이지만, 새벽이나 저녁이 특별하다. 안개가 낀 날이면 더 묘하다. 무섭다기보다는 고요하다.
개인적으로 새벽 6시 반에 예불 끝나고 오쿠노인을 혼자 걸었는데, 그 45분이 이번 일본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스마트폰 없이 걷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새삼 느꼈다.
슈쿠보 예약하는 방법
고야산 슈쿠보는 고야산 슈쿠보협회(高野山宿坊協会) 웹사이트(shukubo.net)에서 예약하거나, 개별 사원 웹사이트, 또는 호텔스닷컴이나 부킹닷컴에서도 검색할 수 있다.
가격대는 1박 2식 기준으로 1인 13,000엔에서 30,000엔 정도. 사원마다 다르고, 방 위치나 크기에 따라 다르다. 일본어 능숙하지 않아도 영어 대응 가능한 곳들이 많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아서 성수기(봄·가을)에는 몇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슈쿠보에서 쓸 수 있는 일본어
- 「チェックインをお願いします」— 체크인 부탁드립니다
- 「お勤めに参加してもよいですか」— 예불에 참가해도 될까요?
- 「朝食は何時からですか」— 아침 식사는 몇 시부터인가요?
- 「精進料理が初めてで楽しみにしています」— 쇼진 요리가 처음이라 기대됩니다
- 「奥之院への道を教えていただけますか」— 오쿠노인 가는 길 알려주실 수 있나요?
슈쿠보는 고급 리조트가 아니다. 방이 넓지도 않고, TV도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여행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를 내려놓게 한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와 알림 소리로부터 잠깐 분리되는 경험. 그게 슈쿠보의 진짜 서비스인지도 모른다.





